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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숨결 _ 한국현대수묵화 러시아 특별전 / 박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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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studio 작성일16-09-17 15:40 조회32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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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그, 한국국제교류재단)



박래경 (미술평론가)


1. 한국현대수묵화의 새로운 동향

 한국미술에는 색채로서 주로 그리는 채색화와 함께 수묵화라는 큰 줄거리의 회화세계가 있다. 그것이 전통미술에서는 정신성이 강하게 들어나는 산수화에서 주로 표현된 표현영역이고 특히 마지막 왕조인 조선시대에는 하나의 지배적인 표현영역이 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표현세계는 자기 자신을 포함한 인간과 함께 자연, 우주를 화폭에 아우르는 것으로 단순히 육안으로 보는 실제세계를 재현, 표현, 전달을 넘어선다. 실제세계를 넘어서는 정신의 자유로운 표현이 그 특징이라 하겠다. 이런 표현이 가능한 것은 한지라는 특유한 성질을 가진 흰 종이 위에(가끔 엷은 비단 위에) 붓에 의한 먹의 짙고 옅음, 물기가 많거나 적은에 따라, 혹은 붓의 빠른 운필이나 더딘 운필에 따라 즉 뭇의 움직임에 따라 먹을 갈아 모은 먹물이라는 묵(墨)의 거의 무한한 표현이 전개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결국 형상표현 이상의 표현영역이며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이상의 세계의 표현을 가능하게 한다. 삼라만상의 물상의 세계가 단지 흰 바탕 위의 묵의 variation과 그것을 표현하는 붓의 흔적 여하에 따라서 생명력과 기운이 가득한 다양한 화면이 형성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표현 매체에 의한 수묵의 표현방법이 한국인의 마음과 정신을 사로잡아 일찍부터 이 방법을 선호하고 있다. 그래서 한국적 미감의 한 중요한 표현영역으로 가령 응집되고 절제된 단순한 선이나 부드럽고 신비스러운 공간감각의 산출에서 살아 있는 그림으로 자리잡게 된다. 그러니까 수묵화에서는 단순히 눈에 보이는 물상의 세계를 재현 또는 전달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물상의 세계를 보고 표현하는 사람의 마음과 정신이 함께 전달되는 측면이 강하므로 어느 정도의 추상성이 이미 그 속에 포함도어 있다고 하겠다.

20세기 중반이후로 뚜렷하게 보이기 시작한 한국현대미술에서는 유화기법에 의한 사실화와 서양현대미술의 영향에서 자극 받은 실험적 미술의 여러 경향 외에 특히 전통에 깊이 뿌리를 둔 이러한 수묵화 계열이 서서히 변화를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러한 새로운 변화양상은 시대를 내려오면서 전통적 미학과 회화론의 무거운 짐과 다양한 실험적 시도를 꾀하고 있는 현대미술에서 오는 심리적 부담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의 모색시기를 맞이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번 <한국현대미술전>에 소개되는 수묵화가들의 작품들은 그러한 오늘의 여려 변화와 모색의 양상들을 9명의 작가에 압축해서 보여주게 된 것이다. 60대의 원로작가에서 30대의 청년작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층에 속하는 이들 작가는 그들의 그림 수련과정에서 모두 전통화법이나 전통미하, 전통회화론에 의한 수묵화의 진수를 경험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그만큼 한국현대회화로서의 수묵화의 의미와 가치를 진지하게 모색하는 일에 노력을 경주하게 된다고 볼 수 있다. 이들 그림은 크게 구분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김호득, 오숙환, 김성희 최순영의 그림을 보면 각각 다른 표현적 토대를 자기고 있으면서도 최소한의 형상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긴장감에 가득 찬 즉흥성과 생명력이라 할 수 있는 기(ki)를 화면에 가득 채우고 있는 김호득의 <폭포>는 그러한 수뭇화에 중심이 되고 있는 생동적인 기운이 시간 속에 살아 있는 자연의 한 계기 즉, 폭포를 직관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말 할 수 있다. 그것은 표현대상을 최대한도로 응집된 힘으로 단순화시킬 수 있는 필력에 의해 비로소 가능하다. 여기에 자연 그 자체를 넘어서는 정신적인 힘이 전달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모래의 무늬가 물결의 흔적처럼 이어지는 그림을 보여주는 오숙환의 경우 그녀가 그린 그림 자체가 조용하고 정적이 흐르는 화면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런데 바로 그 정적의 모래무늬의 물결 같은 흔적 자체가 오히려 끝 모를 우주의 움직임의 에너지를 전하고 있다는 한 단계 높은 인식의 차원을 직감케 하는 것이다. 녀의 작품 <빛과 시공간> 연작은 바로 그런 정적인 세계 속에서 움직임을 현시하고 있음으로서 오히려 한 가닥의 신비로움마저 감지케 한다. 이들 두 작가의 경우와는 다르게 자연을 대상으로 하는 전통 수묵화의 상징성을 작가 개인의 상상에 의한 상징의 체계로 전환시킨 예가 김성희의 <어주도>연작에서 볼 수 있다. 가령 달이 떠 있는 대나무통 위를 고기잡이배로 변신한 대나무 잎 한 잎이 떠 있는 한 점의 <어주도>에서 강직하고 고결한 인격을 상징하는 인간의 존재를 암시하고 있음을 본다. 그녀 개인의 의미부여가 전통적으로 고결한 인격을 상징하는 덕성을 가진 대나무라는 자연에 새로운 형태로서 관계 설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전통적인 수묵화의 자연을 보는 방법을 새롭게 근접하는 작가가 있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대자연에 대한 전통적 시점, 즉 부감법을 한국의 산, 가령 지리산과 같은 산이 웅장한 맛을 수묵으로 시도한 최순영의 작품은 산의 뼈대와 아기자기한 골자기의 구조를 크고 작은 ant 놀림으로 축적시미고 그러한 공간 효과를 높이기 위해 입체적 실험을 collage 방식으로 확대시키기도 한다. 한국자연과 수묵화적 표현 방법의 관계가 얼마만큼 끈질기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2.수묵화에서 찾는 다양한 추상성 그리고 일상성

 전통수묵화의 세계에서 벗어나려는 한국현대수묵화가들의 또 다른 노력은 그 추상성의 현대적 의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정탁영, 이종목, 송수련이 여기에 포함될 수 있다. 한국의 수묵화 이론에 내재하고 있는 추상성을 극대화하여 화면의 비의도적인 작업과정을 강하게 부각시키고 있는 정탁영의 경우가 좋은 예가 될 것이다. 그의 <영겁에서>연작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자연의 법칙에서 찾아볼 수 있는 우연성, 우연의 만남, 비작위성 등이며 이들 모두는 의식적, 논리적 또는 이성적 노력과는 반대위치에 있다. 그는 인체와 자연과 우주가 우연히 만나는 하나의 장으로서 작품을 생각하고 있으며 따라서 그것은 영원 또는 영겁과 찰라의 시간성을 공유하는 관계성의 성립으로 이어지는 것으로써 무심이라는 마음을 비우고 대상도 비우고 그렇게 비워감에 따라서 비로소 그 명료함을 바라볼 수 있는 세계라고도 말 할 수 있다. 그 오묘함을 그는 하나도 모양태가 같지 않고 어느 묵색도 동일한 것이 없는 화면으로 스스로 이룩하게 함으로써 자신의 정관적, 또는 명상적 미학을 실현시키고 있는 것이다. 결과는 밝고 어둠의 다양한 관계에 의한 하나의 환영적 추상화면으로 현재화되게 된 것이다. 이와는 달리 흰 바탕의 종이 위에 묵에 의한 점이나 선, 또는 면을 붓으로 세밀하고도 여유롭게 풀어냄으로서 자연 이미지를 화면 위에 노닐게 하는 수묵화를 자신 있게 보여주는 이종목의 또 다른 추상세계가 있다. 여기서는 중첩된 이미지가 응집된 힘으로나 아니면 이들의 유희적인 화면 위의 노닐고 있는 양태가 사뭇 회화로서의 자유를 구가하고 있는 것이다. 무거운 수묵화의 이론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하나의 본보기를 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한편 수묵화의 추상성은 물과 묵 그리고 종이라는 과거의 수묵화의 전통적 매체 자체에 대한 하나의 반성에서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경우가 있다. 종이 바탕에 스며드는 묵과 물의 붓놀림이 이루어내는 스며들거나 번짐의 효과를 오히려 차단하는 점에 목적을 둠으로서 현대수묵화의 한 방향성을 앍을 수 있다. 이와 같이 억제된 바탕 처리 위에서 자연에서 연유된 대상세계와 그에서 연유된 내적 시선을 구성력이 강한 추상화 그림으로 보여주는 송수련의 그림세계가 그 한 예가 될 것이다. 화면의 표면 위에서 엷고 짙은 묵색이 이루어내는 자연 이미지의 내면화는 세상을 보는 온화하고도 포옹적인 사각의 일면을 들어내는 작가 자신의 세상을 보는 관점과 관계가 있다 하겠다.

이와 같이 인간과 자연 또는 대우주를 포괄하는 형상세계의 표현을 수묵화이 기본으로 삼는 작가의 경우나 이의 추상적 표현과 같은 자유로운 표현세계에 그 기반을 두는 경우와 같이 큰 과제를 둘러싸고 한국현대 수묵화는 그동안 오력을 집중해 온 것이 사실이다. 한편 오늘날의 젋은층의 수묵화가들은 바로 자기네들이 살고 있는 현재의 삶과 더불어 자기 자신을 둘러싼 현재에 시점을 집중시킴으로써 현대사회에서 그들이 추구해야 할 새로운 과제를 수묵화의 표현에 부여하고 있다. 도시며 환경이며 시민 생활의 구석구석이 시야에 들어 올 수 있다. 이 전시회에서는 그 중에 하나의 과제로서 제시할 수 있는 일상성이라는 주제영역을 보이게 된다.

여기에 유근택과 김덕기가 해당된다.

자주 만나는 일상적 풍경이나 생활 속에서의 자잘한 일상적 대상을 마주하는 주체로서의 작가자신이 그이 손과 마음으로 이들 대상과 일체가 되는 차원에서 이들을 확인하는 과정이 화면으로 형성되고 있는 것이 유근택의 그림이다. <창 밖을 나선 풍경>연작은 그러한 대상세계를 마주하고 있는 작가자신의 현재적 의식과 태도를 호분 위에 묵으로 그린 그림으로써 잔잔한 점들로 전달하고 있다. 우현한 수묵산수가 이끌어내려는 데에 그의 작업의 의미를 두게 된 것이다.

한편 가정적인 삶의 행복스러운 환경을 즐거운 수묵의 필법으로 보여준 예가 김덕기의 <아내의 정원> 등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 작가의 이러한 주제설정이나 소재 채택 자체가 과거의 수묵화에서 볼 수 있는 일상성의 기물 등의 그림에서 있어 온 것이 사실이지만 그러한 생활 속의 환경이 작가의 애정 어린 친밀감으로 그림 속에 표현된다는 것은 이전에는 없던 일이다. 수묵 또는 수성과 물성의 과슈 같은 채색 물감을 사용하여 일획에 의해 윤곽 지어지는 수묵필법으로 친밀한 일상성의 대상세계가 여기에 그 모습을 들어내고 있다.

형상성이 있는 그림, 추상적인 그림 또는 일상적 삶의 실제세계가 이와 같이 다른 방법과 다른 필묵의 전개에서 찾아볼 수 있는 수묵화의 세계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한국수묵화의 맥을 잇는 새로운 시도의 근저가 되어줄 것이다. 이는 수묵화의 표현세계가 그의 다양한 표현 가능성이라는 잠재력 때문에 그만큼 한국현대화가들의 관심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는 뜻이 된다.


한국현대수묵화 러시아 특별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그, 한국국제교류재단)

No.: 5, Read: 303, Vote: 0, 2005/01/07 16: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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