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숨 쉬는 삶의 기쁨과 세상의 평온 - 김 노 암(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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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studio 작성일26-08-05 13:21 조회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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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숨 쉬는 삶의 기쁨과 세상의 평온
김노암(미술평론가)
1
마음에 큰 변화가 생겼다. 그림은 선과 면과 색, 그리고 붓질이 개성을 만들어 낸다. 김덕기 작가의 그림에 변화가 분명하게 표현되고 있다. 오랜 기간 정련해 온 자신만의 세계의 성격과 질서가 해체되고 있다. 새로운 세계의 얼굴이 드러나는 것처럼 보인다.
이번 개인전에서 목격되는 가장 큰 변화는 화면에 보다 역동적인 에너지가 더해졌다는 점이다. 작가가 방문했던 스페인과 이탈리아를 비롯한 지중해 연안의 풍경에서 무언가 생동하는 에너지를 수혈받은 것처럼 보였다. 작가의 이야기에서도 참신하면서도 활달한 기분과 힘을 느낄 수 있었다. 느낌과 감각, 감정이 뒤섞이는 가운데, 그간 평안한 안녕과 기쁨의 세계가 구축해 온 완전한 질서와 균형 위로 피부를 간질이는 바람처럼 변화의 채색과 붓질이 살랑인다. 나무들은 마치 화면 밖으로 튀어나올 듯, 살아 숨 쉬며 기지개를 켜고 있다. 수직과 수평의 방향성으로 구성되었던 색의 점묘(點描)는 비정형의 형태로 확산되고 응축된다.
서구 미술사에서 조르주 쇠라(Georges Seurat)의 신인상주의 점묘가 빛을 과학적으로 분할하는 ‘정적인 질서’였다면, 한국화의 필묵적 전통을 관통하는 김덕기의 신작은 점들이 스스로 움직이는 후기 인상주의나 표현주의적 동세(kinetic movement)와 친연성을 보여주고 있다. 작가의 이미지는 기운생동을 연상하는 에너지를 연상시키며, ‘망막적 재현의 점’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인류의 ‘실존적 에너지를 분출하는 운동의 점’으로 전이되고 있다.
이번 전시 출품작 가운데 <셰필드 파크 앤 가든 –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2026)이 눈에 띈다. 작가는 이 작품에 대해 “나는 실제 풍경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그날의 빛과 공기, 그리고 마음속에 오래 남은 감정을 화면 위에 다시 그려낸다. 점을 하나하나 쌓아 올리는 과정은 행복했던 기억을 되새기는 시간이기도 하다. 작은 색점들이 모여 하나의 풍경을 이루듯, 우리의 소소한 일상 속 따뜻한 순간들이 모여 삶을 더욱 아름답게 만든다고 믿는다.”라고 말한다. 좀 긴 인용이지만, 나는 작업 노트에서 작가가 고백하는 이야기와는 다소 다른 인상을 작품에서 받았다.
“점을 하나하나 쌓아 올리는 과정”이라는 표현은 다른 작품들에는 잘 부합하는데, 정작 이 작품에는 상대적으로 다른 작품과는 달리 “쌓아 올리는 과정” 보다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와 풀의 역동적인 활달한 이미지가 더 강렬하다. 작가의 감정의 운동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다른 작품들이 절제된 구성과 점묘의 안정적인 화면과는 다른 인상을 주고 있다. 영국 셰필드 파크 앤 가든의 본 모습이 본래 그러해서 작가가 그 풍경을 충실하게 재현했다 하더라도 이전 작가의 작품들과는 사뭇 다른 이미지임에는 틀림없다. 이 작품을 색채를 흑백의 모노크롬으로 바꿔 본다면 아마도 정선(鄭敾)의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1751)에 표현된 인왕산의 검은 괴석들의 형태가 자아내는 율동에 근접할 정도의 에너지가 느껴진다.
2
이런 변화는 <셰필드 파크 앤 가든 –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2026)에 앞서서 포르투갈 여행 중 제작한 <알부페이라 – 붉은 절벽과 소나무 숲이 보이는 풍경>(2024)에서 이미 감지할 수 있다. 붉은 절벽 부분의 표현을 보면, 단순히 하나의 색채가 아니라 다채로운 색채의 복잡성과 운동성을 확인할 수 있다. 붉은 절벽이 있는 풍경에서 자연의 웅장함을 느낀 작가의 감흥이 자유분방하게 표출되고 있다. 우리는 선과 채색과 면, 구성과 비율, 붓질의 세기와 방향성 등이 교묘하게 균형을 이루는 매력적인 색의 파노라마를 경험한다. <셰필드 파크 앤 가든 –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2026)의 숲의 표현과 동일한 힘찬 운동감과 채색의 변화무쌍함이 이미 이 작품의 붉은 절벽 부분에서 표현되어 있지 않은가.
“스페인의 붉은 대지 위로 아침이 찾아오면, 눈부신 주황빛 햇살이 온 마을의 지붕을 따스하게 감싸 안습니다. 언덕을 따라 옹기종기 모여 있는 아늑한 집들과 창문 너머로 다정하게 밖을 내다보는 시선들은 멀리 떠나온 여행자의 마음을 포근하게 토닥여 줍니다. — 나무와 숲의 형태를 알록달록한 단면색의 면(面)으로 치환하여 단순화하고, 그 위에 다채로운 색점들을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찍어 올렸습니다. 구릉을 따라 부드러운 리듬을 그리며 쪼개진 색면과 점들의 집적(集積)은, 강렬한 태양 아래 숨 쉬는 스페인 대지의 생명력을 화면에 붙잡아두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푸른 호수 위를 유유히 흘러가는 나룻배와 그 안에서 함께 낚시를 즐기며 호흡을 맞추는 다정한 사람들의 실루엣은 자연의 품 안에서 누리는 가장 순수한 기쁨을 보여줍니다.” _ 작가노트
스페인 여행 중 그린 <호수마을의 아침>(2026) 연작은 작가가 지난 시기 보여주었던 세계의 연장선에 있다. 그러나 표현에 있어서는 확실히 변화를 느낄 수 있다. 대지와 숲과 집들이 배치된 화면 분할이 보다 더 복잡하고 더 음악적 율동이 느껴질 정도로 배열되어 있다. 대지는 마치 강물이 흘러가듯 빛과 색의 향연 속에 율동하며 독특한 에너지와 공간감을 조성한다. 마치 스페인 사람들의 느긋하지만 생활에서 느껴지는 충만한 생의 기쁨과 에너지를 표현하려는 듯 보인다. 이 연작이야말로 작가가 자신의 예술 세계를 대표하는 주제어로 제시해 왔던 ‘기쁨’의 의미를 잘 형상화하고 있다. 작가가 말하는 ‘기쁨’은 단지 사람들의 ‘기쁜’ 감정에 국한되지 않는다. 인간은 물론 자연 마저 현재의 따듯한 사랑과 평화로 충만한 존재의 상태에 있다는 사실을 순간순간 기뻐하는 것이다. 나아가 세상을 주재하는 신(神)의 신성한 기쁨과도 닿아 있다. 이처럼 작가의 ‘기쁨’은 세속적 차원을 넘어 탈속적인 영적 충만함까지 포섭한다.
3
“물결을 가르며 다정하게 도약하는 돌고래 가족과 나무 기둥 위에서 휴식을 취하는 펠리컨의 모습은 이곳이 인간과 자연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평화의 공간임을 보여줍니다. 배 위에서 낚싯대를 드리운 이들의 뒷모습은 수평선 너머에 있을 무언가를 쫓기보다, 지금 이 순간이 주는 고요와 평온을 온전히 누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_ 작가 노트
<키웨스트, 수평선 너머의 평온>(2026) 또한 새롭고 독특한 조형적 구성을 보여준다. 펠리컨 두 마리가 쉬고 있고 돌고래 가족이 바다 위로 즐겁게 튀어 오르는 화면 속에서, 작은 배 위의 인물들은 여유롭게 노를 저으며 세상의 평화를 누린다. 미국 최남단의 섬 키웨스트(Key West)는 헤밍웨이의 해양 생활과 문학적 체험이 축적되어, 훗날 『노인과 바다』(1952)의 집필에 영향을 준 실존적 장소다. 헤밍웨이의 소설 속 노인은 거대한 물고기를 상어 떼에게 모두 뜯기면서도 결코 실망하거나 포기하지 않는 강인한 의지를 보여주었다. 노인의 의지는, 압도적인 자연의 힘과 운명의 아이러니 앞에서 무릎 꿇지 않는 인간의 주체적 이성을 상징한다. 그가 그린 고요한 바다는 단지 무풍지대의 안락함이 아니라, 삶의 거친 풍랑을 겪어낸 자만이 도달할 수 있는 ‘투쟁 결과로서의 평화’에 가깝다. 그러므로 화면 속 풍경에 점경(點景)처럼 아주 작게 그려진 인물들은, 역설적으로 그 노인과 같은 단단한 정신력과 삶의 의지를 내포한 존재들일지 모른다. 작가는 이 미지의 바다가 건네는 푸르름을 통해 치열한 일상을 살아가는 관람객들에게 깊은 안식과 실존적 성찰을 제안한다.
김덕기 작가의 신작은 가족의 ‘목가적인 평화로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실 그 이면에 자연의 숭고함에 맞서는 인간의 영웅적 의지(실존적 분투)가 전제되어야 한다. 잔잔한 바다라는 정경(情景)과 노인이 환기하는 강인한 의지의 대비는, 인류가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기울여 온 영웅적 분투에 대한 은유로 읽힌다.
이처럼 작가는 자연 속에 깃든 생명의 약동, 질서와 풍요를 새롭게 경험하면서 화면은 이전보다 더욱 역동적인 조형 언어를 모색한다. 수없이 축적된 색점들은 빛과 시간, 기억의 흔적이 켜켜이 쌓여 이루어진 결과이며, 화면 전체에는 생명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리듬과 활력이 흐른다.
4
김덕기 작가의 예술 세계는 대중에게 매우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핵심 테마는 전통적인 인간성에 대한 신뢰와 함께 가족과 가정의 미덕을 바탕으로 한 평화롭고 서정적인 풍경이다. 20여 년의 시간이 바람처럼 지났어도 그의 화면은 변치 않는 기쁨과 평온함의 울림을 주었다. 또한 이 기간, 김덕기 작가는 프랑스 작가 미셸 투르니에(Michel Tournier)의 소설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1967) 속 주인공처럼 여주의 스튜디오에서 마치 문명을 거부한 채 섬에 자신의 세계를 새로이 구축하는 인물처럼 홀로 그림을 그려왔다. 그러나 작가는 완전히 자연에 포섭(包攝)되지 않은 채 문명과 자연의 경계에서, 속물적 욕망의 문명에서 벗어나 본질의 삶을 추구하는 존재이자 문명의 비판자로서 자신의 세계를 견지해 왔다. 이는 자연이라는 타자와 깊이 교감하며 내면의 에너지를 응축하고 있는 대지와의 동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작가가 지향하는 세계의 본질은 변함이 없다. 그러나 표현의 층위에서 일어난 변화의 조짐은 분명히 주목해야 한다. 과거 질서정연하게 구축되었던 색과 점의 방향성이 해체되고, 화면 위에서 유기적인 생명체처럼 다방향으로 움직인다. 숲은 살아 숨 쉬듯 호흡하고, 나뭇가지와 잎사귀를 이리저리 크게 휘두르는 듯한 활달한 붓질은 화면을 보다 입체적이고 풍성하게 만든다. 그 이미지 안에는 계절의 순환과 생로병사하는 세계의 역동적인 운동성이 함축되어 있다. 이러한 변화는 20세기 초 표현주의자들이 내면의 운동에너지를 화면에 투사했던 방식과 오버랩되는 동시에, 한국화 특유의 기운생동하는 운필의 멋을 재소환한다. 조촐하고 소박한 정적(靜的) 아름다움과 능동적으로 변화하는 동적(動的) 힘이 교차하는 지점이다.
김덕기 작가의 이번 신작들은 지중해 연안과 스페인의 대지에서 마주한 생명의 에너지와 빛을 화면으로 끌어들이며, 그가 오랫동안 천착해 온 ‘기쁨’이라는 주제를 더 높은 차원으로 격상시킨다. 이제 그의 기쁨은 단순히 안락한 가족의 울타리 안에 머무는 소박한 감정을 넘어, 대지와 우주, 자연과 인간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거대한 생명력의 순환으로 확장하고 있다. 화면 위를 자유롭게 누비는 수많은 색점과 역동적인 운필은 그 경이로운 생명감이 축적된 흔적이자, 혼돈 속에서 새로운 평화의 질서를 구축하려는 창조력의 산물이다. 작가는 조용히 치열한 경쟁과 갈등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삶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위로와 성찰의 계기를 열어놓는다.
김노암(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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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큰 변화가 생겼다. 그림은 선과 면과 색, 그리고 붓질이 개성을 만들어 낸다. 김덕기 작가의 그림에 변화가 분명하게 표현되고 있다. 오랜 기간 정련해 온 자신만의 세계의 성격과 질서가 해체되고 있다. 새로운 세계의 얼굴이 드러나는 것처럼 보인다.
이번 개인전에서 목격되는 가장 큰 변화는 화면에 보다 역동적인 에너지가 더해졌다는 점이다. 작가가 방문했던 스페인과 이탈리아를 비롯한 지중해 연안의 풍경에서 무언가 생동하는 에너지를 수혈받은 것처럼 보였다. 작가의 이야기에서도 참신하면서도 활달한 기분과 힘을 느낄 수 있었다. 느낌과 감각, 감정이 뒤섞이는 가운데, 그간 평안한 안녕과 기쁨의 세계가 구축해 온 완전한 질서와 균형 위로 피부를 간질이는 바람처럼 변화의 채색과 붓질이 살랑인다. 나무들은 마치 화면 밖으로 튀어나올 듯, 살아 숨 쉬며 기지개를 켜고 있다. 수직과 수평의 방향성으로 구성되었던 색의 점묘(點描)는 비정형의 형태로 확산되고 응축된다.
서구 미술사에서 조르주 쇠라(Georges Seurat)의 신인상주의 점묘가 빛을 과학적으로 분할하는 ‘정적인 질서’였다면, 한국화의 필묵적 전통을 관통하는 김덕기의 신작은 점들이 스스로 움직이는 후기 인상주의나 표현주의적 동세(kinetic movement)와 친연성을 보여주고 있다. 작가의 이미지는 기운생동을 연상하는 에너지를 연상시키며, ‘망막적 재현의 점’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인류의 ‘실존적 에너지를 분출하는 운동의 점’으로 전이되고 있다.
이번 전시 출품작 가운데 <셰필드 파크 앤 가든 –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2026)이 눈에 띈다. 작가는 이 작품에 대해 “나는 실제 풍경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그날의 빛과 공기, 그리고 마음속에 오래 남은 감정을 화면 위에 다시 그려낸다. 점을 하나하나 쌓아 올리는 과정은 행복했던 기억을 되새기는 시간이기도 하다. 작은 색점들이 모여 하나의 풍경을 이루듯, 우리의 소소한 일상 속 따뜻한 순간들이 모여 삶을 더욱 아름답게 만든다고 믿는다.”라고 말한다. 좀 긴 인용이지만, 나는 작업 노트에서 작가가 고백하는 이야기와는 다소 다른 인상을 작품에서 받았다.
“점을 하나하나 쌓아 올리는 과정”이라는 표현은 다른 작품들에는 잘 부합하는데, 정작 이 작품에는 상대적으로 다른 작품과는 달리 “쌓아 올리는 과정” 보다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와 풀의 역동적인 활달한 이미지가 더 강렬하다. 작가의 감정의 운동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다른 작품들이 절제된 구성과 점묘의 안정적인 화면과는 다른 인상을 주고 있다. 영국 셰필드 파크 앤 가든의 본 모습이 본래 그러해서 작가가 그 풍경을 충실하게 재현했다 하더라도 이전 작가의 작품들과는 사뭇 다른 이미지임에는 틀림없다. 이 작품을 색채를 흑백의 모노크롬으로 바꿔 본다면 아마도 정선(鄭敾)의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1751)에 표현된 인왕산의 검은 괴석들의 형태가 자아내는 율동에 근접할 정도의 에너지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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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변화는 <셰필드 파크 앤 가든 –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2026)에 앞서서 포르투갈 여행 중 제작한 <알부페이라 – 붉은 절벽과 소나무 숲이 보이는 풍경>(2024)에서 이미 감지할 수 있다. 붉은 절벽 부분의 표현을 보면, 단순히 하나의 색채가 아니라 다채로운 색채의 복잡성과 운동성을 확인할 수 있다. 붉은 절벽이 있는 풍경에서 자연의 웅장함을 느낀 작가의 감흥이 자유분방하게 표출되고 있다. 우리는 선과 채색과 면, 구성과 비율, 붓질의 세기와 방향성 등이 교묘하게 균형을 이루는 매력적인 색의 파노라마를 경험한다. <셰필드 파크 앤 가든 –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2026)의 숲의 표현과 동일한 힘찬 운동감과 채색의 변화무쌍함이 이미 이 작품의 붉은 절벽 부분에서 표현되어 있지 않은가.
“스페인의 붉은 대지 위로 아침이 찾아오면, 눈부신 주황빛 햇살이 온 마을의 지붕을 따스하게 감싸 안습니다. 언덕을 따라 옹기종기 모여 있는 아늑한 집들과 창문 너머로 다정하게 밖을 내다보는 시선들은 멀리 떠나온 여행자의 마음을 포근하게 토닥여 줍니다. — 나무와 숲의 형태를 알록달록한 단면색의 면(面)으로 치환하여 단순화하고, 그 위에 다채로운 색점들을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찍어 올렸습니다. 구릉을 따라 부드러운 리듬을 그리며 쪼개진 색면과 점들의 집적(集積)은, 강렬한 태양 아래 숨 쉬는 스페인 대지의 생명력을 화면에 붙잡아두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푸른 호수 위를 유유히 흘러가는 나룻배와 그 안에서 함께 낚시를 즐기며 호흡을 맞추는 다정한 사람들의 실루엣은 자연의 품 안에서 누리는 가장 순수한 기쁨을 보여줍니다.” _ 작가노트
스페인 여행 중 그린 <호수마을의 아침>(2026) 연작은 작가가 지난 시기 보여주었던 세계의 연장선에 있다. 그러나 표현에 있어서는 확실히 변화를 느낄 수 있다. 대지와 숲과 집들이 배치된 화면 분할이 보다 더 복잡하고 더 음악적 율동이 느껴질 정도로 배열되어 있다. 대지는 마치 강물이 흘러가듯 빛과 색의 향연 속에 율동하며 독특한 에너지와 공간감을 조성한다. 마치 스페인 사람들의 느긋하지만 생활에서 느껴지는 충만한 생의 기쁨과 에너지를 표현하려는 듯 보인다. 이 연작이야말로 작가가 자신의 예술 세계를 대표하는 주제어로 제시해 왔던 ‘기쁨’의 의미를 잘 형상화하고 있다. 작가가 말하는 ‘기쁨’은 단지 사람들의 ‘기쁜’ 감정에 국한되지 않는다. 인간은 물론 자연 마저 현재의 따듯한 사랑과 평화로 충만한 존재의 상태에 있다는 사실을 순간순간 기뻐하는 것이다. 나아가 세상을 주재하는 신(神)의 신성한 기쁨과도 닿아 있다. 이처럼 작가의 ‘기쁨’은 세속적 차원을 넘어 탈속적인 영적 충만함까지 포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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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결을 가르며 다정하게 도약하는 돌고래 가족과 나무 기둥 위에서 휴식을 취하는 펠리컨의 모습은 이곳이 인간과 자연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평화의 공간임을 보여줍니다. 배 위에서 낚싯대를 드리운 이들의 뒷모습은 수평선 너머에 있을 무언가를 쫓기보다, 지금 이 순간이 주는 고요와 평온을 온전히 누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_ 작가 노트
<키웨스트, 수평선 너머의 평온>(2026) 또한 새롭고 독특한 조형적 구성을 보여준다. 펠리컨 두 마리가 쉬고 있고 돌고래 가족이 바다 위로 즐겁게 튀어 오르는 화면 속에서, 작은 배 위의 인물들은 여유롭게 노를 저으며 세상의 평화를 누린다. 미국 최남단의 섬 키웨스트(Key West)는 헤밍웨이의 해양 생활과 문학적 체험이 축적되어, 훗날 『노인과 바다』(1952)의 집필에 영향을 준 실존적 장소다. 헤밍웨이의 소설 속 노인은 거대한 물고기를 상어 떼에게 모두 뜯기면서도 결코 실망하거나 포기하지 않는 강인한 의지를 보여주었다. 노인의 의지는, 압도적인 자연의 힘과 운명의 아이러니 앞에서 무릎 꿇지 않는 인간의 주체적 이성을 상징한다. 그가 그린 고요한 바다는 단지 무풍지대의 안락함이 아니라, 삶의 거친 풍랑을 겪어낸 자만이 도달할 수 있는 ‘투쟁 결과로서의 평화’에 가깝다. 그러므로 화면 속 풍경에 점경(點景)처럼 아주 작게 그려진 인물들은, 역설적으로 그 노인과 같은 단단한 정신력과 삶의 의지를 내포한 존재들일지 모른다. 작가는 이 미지의 바다가 건네는 푸르름을 통해 치열한 일상을 살아가는 관람객들에게 깊은 안식과 실존적 성찰을 제안한다.
김덕기 작가의 신작은 가족의 ‘목가적인 평화로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실 그 이면에 자연의 숭고함에 맞서는 인간의 영웅적 의지(실존적 분투)가 전제되어야 한다. 잔잔한 바다라는 정경(情景)과 노인이 환기하는 강인한 의지의 대비는, 인류가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기울여 온 영웅적 분투에 대한 은유로 읽힌다.
이처럼 작가는 자연 속에 깃든 생명의 약동, 질서와 풍요를 새롭게 경험하면서 화면은 이전보다 더욱 역동적인 조형 언어를 모색한다. 수없이 축적된 색점들은 빛과 시간, 기억의 흔적이 켜켜이 쌓여 이루어진 결과이며, 화면 전체에는 생명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리듬과 활력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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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기 작가의 예술 세계는 대중에게 매우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핵심 테마는 전통적인 인간성에 대한 신뢰와 함께 가족과 가정의 미덕을 바탕으로 한 평화롭고 서정적인 풍경이다. 20여 년의 시간이 바람처럼 지났어도 그의 화면은 변치 않는 기쁨과 평온함의 울림을 주었다. 또한 이 기간, 김덕기 작가는 프랑스 작가 미셸 투르니에(Michel Tournier)의 소설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1967) 속 주인공처럼 여주의 스튜디오에서 마치 문명을 거부한 채 섬에 자신의 세계를 새로이 구축하는 인물처럼 홀로 그림을 그려왔다. 그러나 작가는 완전히 자연에 포섭(包攝)되지 않은 채 문명과 자연의 경계에서, 속물적 욕망의 문명에서 벗어나 본질의 삶을 추구하는 존재이자 문명의 비판자로서 자신의 세계를 견지해 왔다. 이는 자연이라는 타자와 깊이 교감하며 내면의 에너지를 응축하고 있는 대지와의 동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작가가 지향하는 세계의 본질은 변함이 없다. 그러나 표현의 층위에서 일어난 변화의 조짐은 분명히 주목해야 한다. 과거 질서정연하게 구축되었던 색과 점의 방향성이 해체되고, 화면 위에서 유기적인 생명체처럼 다방향으로 움직인다. 숲은 살아 숨 쉬듯 호흡하고, 나뭇가지와 잎사귀를 이리저리 크게 휘두르는 듯한 활달한 붓질은 화면을 보다 입체적이고 풍성하게 만든다. 그 이미지 안에는 계절의 순환과 생로병사하는 세계의 역동적인 운동성이 함축되어 있다. 이러한 변화는 20세기 초 표현주의자들이 내면의 운동에너지를 화면에 투사했던 방식과 오버랩되는 동시에, 한국화 특유의 기운생동하는 운필의 멋을 재소환한다. 조촐하고 소박한 정적(靜的) 아름다움과 능동적으로 변화하는 동적(動的) 힘이 교차하는 지점이다.
김덕기 작가의 이번 신작들은 지중해 연안과 스페인의 대지에서 마주한 생명의 에너지와 빛을 화면으로 끌어들이며, 그가 오랫동안 천착해 온 ‘기쁨’이라는 주제를 더 높은 차원으로 격상시킨다. 이제 그의 기쁨은 단순히 안락한 가족의 울타리 안에 머무는 소박한 감정을 넘어, 대지와 우주, 자연과 인간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거대한 생명력의 순환으로 확장하고 있다. 화면 위를 자유롭게 누비는 수많은 색점과 역동적인 운필은 그 경이로운 생명감이 축적된 흔적이자, 혼돈 속에서 새로운 평화의 질서를 구축하려는 창조력의 산물이다. 작가는 조용히 치열한 경쟁과 갈등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삶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위로와 성찰의 계기를 열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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