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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일구어가는 행복드라마 - 김덕기의 화첩기행 /서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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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studio 작성일20-04-28 01:51 조회63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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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uschwanstein Castle-Scenery with Canaries, 2019, Acrylic on Canvas, 112.1X162.2cm ⓒDukki Kim




가족이 일구어가는 행복드라마

- 김덕기의 화첩기행 -

 

서 성 록(안동대 미술학과 교수)



‘홈 스위트 홈’

동화 속에서나 볼 수 있음직한 인형 같은 집, 그 뒤로는 구름이 한가로이 떠 있고 숲에선 새들이 쉴 새 없이 지저귀고 백화난만한 꽃들이 아우성이다. 앞뜰에서는 그네를 타거나 숨바꼭질을 하고 자전거를 타면서 깔깔거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활기를 띤다. 이것은 영화 속의 장면이 아니라 김덕기의 그림 속 이야기다. 그의 그림은 더없이 명랑한 분위기와 삶의 긍정성을 띠었다.

그의 화풍은 아카데믹하지도 사실적이지도, 그렇다고 초현실주의적이거나 추상적이지 않다. 기존의 양식개념으로 묶기 어려운 난점을 지닌다. 이러저러한 틀에서 멀찌감치 벗어난 그의 화풍을 굳이 명명하자면 ‘소박한 미술’로 부를 수 있을 것인데 나탈리아 브로드스카야 (Natalia Brodskaya)는 ‘소박한 미술’의 특징으로 ‘자연스러움’, ‘순진함’, ‘미숙함’, ‘진솔함’, ‘솔직함’등을 꼽았다. 이런 점은 동화(童畵)를 보듯 천진난만한 그의 작품과 맞아떨어진다. 사과나무가 사과를 맺듯이 소박한 미술은 소박한 마음에서 나온다. 작가는 타성화된 의식의 회랑(回廊)에서 탈출하여 순수한 눈빛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어른이나 아이들, 남성과 여성이 같이 보아도 유쾌한 그림이다. 그림으로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하는 독특한 매력이 있다.

여러 차례의 작품전을 통해 그는 ‘가족이 만들어가는 행복드라마’를 줄곧 발표해오고 있다. 초기에는 정물이나 인물과 같은 이미지를 통해 은유적으로 부부애나 가족애를 나타내기도 했으나 점차 풍경 속의 가족그림으로 발전해갔다. 매재도 담백한 수묵에서 시작하여 채색화, 라인 드로잉을 거쳐 오늘의 아크릴, 유화로 안착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제 ‘가족그림’은 그의 작품세계를 대변하는 것으로 굳어져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사실 그가 가정에 관심을 기울이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가족이 그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은 그가 일찍이 부모님을 여의고 외롭게 살아왔던 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오랜 추억은 / 슬프도록 아픈 / 그리움으로 / 나의 마음을 / 울린다 // 백발의 아버지 / 밭 가운데 어머니 / 공손히 인사하고 / 나는 돌아 서네 // 그토록 아름다운 시간이었었지!” (자작시 중에서)

작가는 ‘지금은 곁에 없는, 아주 먼 나라의 손님’이 되어버렸지만 ‘군것질 대신 이야기를 들려주시고’ ‘장날 일 보고 들어오시는 흰 수염의 아버님’을 지금도 또렷이 기억한다. 그의 청소년시절은 부모님이 계시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은 데서 출발했으며 이것이 곧 그를 조숙한 10대 소년으로 만들었다. 외로움 속에서 지내던 그가 지금의 아내를 만나 가정을 이루면서 작가는 가정의 소중함을 느꼈다.

김덕기가 생각하는 행복은 아득히 먼 훗날 성취할 꿈이 아닌, 현재진행형의 드라마로 제시된다. 그는 시(詩)로도 그의 마음을 전하고 있다.

 

“작은 집이지만 가꿀 수 있는 꽃과 나무들이 있어 만족하다. / 부유하지 않지만 나를 믿어주는 아내와 / 아빠와 엄마를 사랑하는 아들이 있어 감사한다. / 딱딱하고 차가운 외부의 도전들이 조간신문처럼 찾아오지만 / 꽃피우고 떨어지는 사이에 어떤 것은 사라지고 어떤 것은 훨씬 작아진다. / 오늘도 파란 하늘과 흘러가는 구름을 볼 수 있어 감사하다.”

 

그에게 있어 가족은 그림을 그리는 이유이자 활력의 발원지이다. 그가 선택한 모티브는 어찌 보면 특별할 게 없는 일상적인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다. 연을 날리고 곤충채집을 하며 노는 아이들, 벤치에서 담소를 나누는 부부, 들풀이 무성한 시골길, 가족의 나들이 등이 화면을 한층 밝고 명랑하게 물들인다. 그의 그림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생활의 즐거움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이다. 작고 소중한 꿈들이 바로 우리가 찾던 것임을 일깨워준다.

 

 

부산에서 할슈타트까지

그의 그림이 현재와 같이 본격화된 것은 그의 고향마을 인근에 있는 경기도 여주의 당우리로 작업실을 옮기면서부터이다. 환경이 조금 바뀌었을 뿐인데 그의 그림에는 큰 진폭의 변화가 생겼다. 전에는 볼 수 없었던 계절에 대한 감각이 뚜렷해졌을 뿐만 아니라 등장인물들의 움직임도 활발해졌으며, 무엇보다 그다운 순수성과 천연스러움을 마음껏 화면에 담을 수 있었던 것이 가장 큰 수확이었다.

환경이 바뀌면서 잔잔하고 내밀한 작품의 분위기가 생기발랄해졌으며, 그의 작품의 기법인 도트 패턴이 정원과 들판, 산과 나무를 장식하는 주된 요인으로 화면을 점유하고 있다. 물감 튜브에서 금세 쏟아져 나온 것 같은 원색들이 화면을 물들이면서 우리를 즐거운 세계로 유인한다. 물론 이것을 견인하는 것은 천진난만한 등장인물들과 함께 색깔을 들 수 있다. 감정의 농도를 떨어트리지 않는 범위 내에서 색깔의 순도를 유지하려는 의도를 헤아려볼 수 있을 것이다.

근작에서 작가는 국내외를 여행하면서 그곳의 풍광을 화폭에 담았다. 작가는 2010년경부터 부산과 제주, 독도, 이탈리아 아말피, 토스카나, 베네치아, 나폴리, 그리고 미국의 최남단 키웨스트, 뉴욕의 센트럴 파크, 브라이언트 파크, 런던과 알프스 지역, 프랑스의 시골마을 등을 여행하면서 보고 느낀 풍광을 묘출해왔다. 그러나 장소만 바뀌었을 뿐 사실은 그의 가족 이야기를 담은 것으로 그림을 보는 동안 우리는 그림 속으로 감정이 이입되어 마치 우리 자신이 그림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의 근작에서 우리는 소재의 폭이 넓어졌을 뿐만 아니라 한층 다채로워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작품의 주제는 여전히 가족의 범주 안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으며, 이점은 그의 작품이 일관된 맥락을 띠고 있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그의 작품은 크게 1)라인 드로잉, 2)정원, 3)부산 및 국내, 4)제주, 5)아말피, 6)베네치아, 7)뉴욕 및 마이애미, 8)유럽으로 분류될 수 있다. 라인 드로잉이 오일 파스텔에서 나오는 유려한 선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면 나머지 작품들은 충일한 색채와 색점들로 꾸며져 있다.

‘라인 드로잉’은 그가 무엇에 관심을 두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웃음소리-즐거운 나날들>, <하늘 속 웃음소리>, <우리 집>, <웃음소리>, <웃음소리-아름다운 순간들>, <행복한 마을>등은 모두 그의 자전적인 이야기들에 근거하고 있다. 그가 찾고 누리는 것은 대단하거나 거창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나와 함께 살아가는 가족이 나로 인해 즐겁고 만족하는 것이다. 그림 속의 인물들이 희희낙락할 수 있는 것은 바로 행복이란 가족의 화목한 관계에서 나온다는 것을 말해주지 않나 싶다. 작가는 작품에서 보여지는 행복을 하늘거리는 선에 실어냈으며, 여기서 선은 인물과 집의 윤곽을 구축하고 주위의 나무와 동물들을 만들고 전체를 아우르는 중심축으로 작용하는데 그가 만들어내는 선의 풍부한 변주에 사로잡히게 된다.

‘정원’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그의 작업실이 위치한 당우리를 배경으로 가족의 흥겨운 한때를 묘출하고 있다. 여기에는 <봄의 노래>, <가족-함께하는 시간>, <꽃들은 피어 만발하고 새들은 즐거이 노래하네>와 같은 작품이 포함된다. 화분에 물을 주고 정원을 가꾸는 가족, 초원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부부, 그네타고 연을 날리는 아이들을 볼 수 있다. 봄의 새싹이 피고 여름의 폭염이 작렬하고 가을의 수확, 그리고 겨울의 낭만이 이어지면서 가족은 사랑의 멜로디를 타고 행복의 동산에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른다.

‘라인 드로잉’과 ‘정원’이 그의 작품의 총론에 해당한다면 나머지 작품은 2010년 이후 그가 여행을 다닌 곳을 조명하고 있다. ‘부산 및 국내’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작품은 부산 가덕도의 등대가 보이는 바다풍경과 봄빛이 완연한 청사포의 바다풍경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행복한 마을로 가는 길>은 청정한 가덕도를 찾으면서 그곳을 선경(仙境)같은 곳으로 바꾸어놓았다. 그 외에 <안동의 봄>, <여주-황금물결>, <원더풀 독도>, <즐거운 울릉도-섬들과 등대가 보이는 바다풍경>, <서울나들이>등이 있다.

‘제주’에서는 돌담과 기와집, 삼나무가 눈에 띄고 시원한 푸른빛 바다와 함께 드넓은 목초지가 화면에 잔잔히 펼쳐진다. 여행에서 느낄 수 있는 기대와 설렘이 그림에 실려 있는데 이것은 그가 가족과 함께한 여행이었기에 더욱 소중한 기억으로 남을 수 있었을 것이다. 가정을 이루는 것은 자동차나 집과 같은 외적인 요인 때문이 아니라 부부의 대화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있어서란 말을 실감시켜준다. 전면의 야생화와 후경의 숲을 숱한 색점으로 채워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킨다.

‘아말피’는 다큐멘터리영화 <The Artist>(소울필름 김선영 감독)가 2014년 로마 오버룩 영화제에 초청되어 이탈리아를 방문하였을 때를 기억하며 제작하였다. 김덕기 작가를 주인공으로 제작된 이 작품은 다큐멘터리 경쟁부문 베스트 디렉션 상을 수상하는 기념으로 부산과 서울 영화관에서 기념식과 함께 일반에게 개봉되기도 했다. 작가는 이 무렵 로마를 비롯하여 이탈리아 남부와 피렌체 지역을 탐방하면서 소재를 수집하였다. 이 연작에서는 햇살 가득한 이탈리아의 풍경을 느껴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화려한 꽃밭이나 황금빛 들판을 끼고 있는 시골풍경을 파노라마식으로 전개시켰다. <눈부신 나의 아말피>, <토스카나-사이프러스 나무 사이로>, <피아노 디 소렌토>, <레몬트리가 보이는 아말피 거리>, <아말피 해안의 아침>등은 이탈리아의 풍토를 반영하듯 고채도의 색상과 생동감 있는 이미지들로 채워져 있다. 자전거와 자동차를 타는 아이들과 아빠를 등장시킨 것은 인물이 그림에 활력을 더해주는 요소로 작용한다는 측면도 있지만 단순한 풍경화로 그치기보다 ‘인물이 있는 풍경화’임을 알려준다.

‘아말피’ 연작은 ‘베네치아’ 연작으로 이어진다. 이탈리아 여행 기간 중에 찾은 카프리 섬, 베네치아를 모티브로 한 작품들은 모두 바다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띠고 있는데 작가 특유의 경쾌함과 명랑함을 엿볼 수 있다. 베네치아의 상징인 곤돌라를 비롯하여 에메랄드빛 바다를 질주하는 보트와 요트, 여객선이 청명한 하늘을 나는 새들과 어울려 이국적인 정취를 더해준다. 오염되지 않은 공기와 고풍스런 건물, 그리고 화면을 수놓는 햇살이 꽤나 강렬한 편이다.

‘뉴욕 및 마이애미’는 2017년 마이애미에서 개최된 <코리아 아트쇼>에 참석차 방문한 지역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헤밍웨이의 생가로 알려진 <키웨스트>는 돌고래 가족과 선상에서 낚시를 즐기는 가족이 절묘하게 한 쌍을 이루고 있고, <센트럴 파크>는 뉴욕의 허파로 불리는 센트럴 파크를 가족의 쾌적한 산책지로 해석했는가 하면 <뉴욕-카디널이 보이는 풍경>은 미국의 메가시티를 수림이 우거지고 붉은 카디널과 사람이 조화를 이루는 도시로 풀이하였다. 그리고 수직과 수평이 직교(直交)하는 <브라이언트 파크>에서는 망중한을 즐기는 뉴욕커들의 일상을 다루었다. 도심을 다룬 작품으로는 <뉴욕-워싱턴가>가 있는데 붐비는 거리 사이로 가족이 산책하는 장면을 촘촘한 색점으로 채색하였다.

가족과 함께한 시간들은 ‘유럽’으로 옮겨진다. <호수 위의 가족>, <런던의 아침>, <알프스의 여름>, <프랑스 안시>, <부다페스트-다뉴브강변의 아침>, <할슈타트-햇살은 눈부시게 빛나고>, <노이슈반슈타인 성-카나리아가 보이는 풍경>등은 유럽여행의 기억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이중 <런던의 아침>만 정물화이고 나머지 작품들은 모두 풍경화로 되어 있다. <할슈타트- 햇살은 눈부시게 빛나고>는 산세와 호수가 있는 전형적인 오스트리아 풍경을 그린 것 같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화면 하단에 깨알만한 작은 보트가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가족을 태우고 떠나는 보트가 그림의 주제를 보충해준다. 이점은 웅장한 알프스 산맥을 배경으로 나무와 건물들이 들어찬 <호엔잘츠부르크 성-햇살은 눈부시게 빛나고>에서도 마찬가지로 확인된다. 화면 우편의 테이블에 자리한 방문객들 또는 가족이 그림에 화색을 돌게 한다.

 

 

행복의 풀무질

그의 작품들은 이국적인 풍경이든 국내 풍경을 담은 것이든 모두 가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지금의 작품이 나오게 된 데에는 비교적 절제된 수묵담채 대신 색채를 적극 구사한 2005년경 <가족> 연작이 단초가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지체도 이전의 장지 대신 발색효과가 좋은 캔버스로 대체하였다.

작가가 그려내는 세상은 칙칙한 흑백의 세상이 아닌, 환희에 찬 세상이다. 그러면 우리는 이 지점에서 왜 작가는 기쁨과 행복만을 드러낼 뿐 인생의 그늘진 부분은 피하는 걸까? 하는 궁금증을 갖게 된다. 만일 그가 삶의 실재를 통찰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표면만을 들여다볼 뿐 이면과 심층까지 헤아리지 못한다는 반증이 될 것이다. 그의 자작시의 한 대목을 살펴보자.

 

“차갑고 건조한 겨울바람 뒤로 / 들녘에 일렁이는 아지랑이 / 그물대는 모양을 보았다. --- 피곤한 붉은 척추보다 / 더 긴장되어 보이는 생동하는 세계 / 세계는 한결같이 / 우리 앞에 가까이 / 햇님처럼 속삭인다.”

작가는 우리가 궁금해 하는 문제에 답하고 있다. ‘차갑고 건조한 겨울’, ‘피곤한 붉은 척추’가 인생의 어두운 골짜기를 상징한다면, ‘들녘에 일렁이는 아지랑이’, ‘생동하는 세계’와 ‘햇님처럼 속삭인다’는 희망찬 지평을 상징한다. 어둠이 깊을수록 밝음도 깊어진다는 말이 있듯이 왜 그가 밝음과 행복을 노래하는지 헤아려볼 수 있을 것이다. 어둠이 밝음을 이길 수 없듯이 비관과 고통이 꿈과 소망을 결코 이길 수 없음을 작가는 강조하고 있다.

수만 개의 섬광이 수면 위를 반짝이는 호수의 수정조각처럼 그의 그림은 기쁨과 생명으로 충만하다. 물론 그런 비밀의 열쇠는 가족에 있다. 우리는 여행을 떠나거나 먼 곳을 갔을 때 출발한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경향이 있다. 왜 사람들은 그런 귀소본능을 갖고 있을까? 그 이유는 사실 단순하다. 집에는 그가 사랑하는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무슨 특별한 일 때문이 아니라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행복의 조건이 된다. 우리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가족 공동체의 울타리 안에서 살아간다. 그러므로 여행자는 익숙한 거주지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기다리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김덕기가 가족을 그린다고 했을 때 그것은 자신이 사랑하고 또 사랑을 받는 공동체를 일순위로 간주하고 있다는 뜻이 된다. 그에게 가정은 단순한 혈연집단이 아니라 살아가는 이유이자 살아갈 이유를 제공하는 무대이다.

“당신의 눈을 감고 가만히 보아요 / 틀림없이 당신은 그곳에서 무엇인가를 하고 있겠지요 / 친구들이 하나둘 모여들고 파란 보따리를 펼치겠지요 / 가만히 보니 그것은 작고 소중한 꿈들이네요” (자작시 중에서) 일상의 경이는 눈을 지그시 감고 주위의 것을 새롭게 인식하는 데에 달려 있다. 우리가 그것을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을 때 친구들은 ‘파란 보따리를 펼’친다.

그림의 정황으로 볼 때 작가는 감상자가 자신이 느낀 것과 같은 기쁨과 즐거움을 공유하길 바라는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그가 그처럼 인물을 동화적으로 표현하고 원색으로 채색하거나 무수한 색점 찍기를 구사하였을 까닭이 없을 것이다. 그의 작품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처럼 해맑고, 순진하기까지 하다. 이런 낙천적인 그림을 통해 그는 지치고 상한 사람들에게 마치 풀무질을 하듯이 기운을 불어넣고 위로의 손길을 편다. 사람들의 어깨를 두드리며 힘내라고 응원을 보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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