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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기의 <베네치아로 가는 길> / 서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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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studio 작성일18-08-11 00:51 조회4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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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기의 <베네치아로 가는 길>




서성록 (안동대 미술학과 교수)

여행 연작에 관하여

일상에서 잠시 떠나 여행을 다녀오는 것만큼 좋은 명약도 없을 것이다. 여행은 매일 반복된 일상의 권태로움을 이길 수 있는 청량제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특히 예술가에게 여행을 통해 얻은 색다른 체험은, 윌리엄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가 “그 광경이 내게 얼마나 큰 풍요로움을 안겨주었는지 모른다”고 말했듯이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김덕기는 근래 들어 여행과 관련한 작품을 꾸준히 발표해오고 있다. 그 첫 단초는 2013년 소울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린 <행복한 마을로 가는 길>전에서 찾을 수 있다. 전원풍경을 담아오던 데서 벗어나 그의 화면에 쪽빛 바다와 해당화, 등대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변화는 부산을 오가면서 접한 바다풍경을 자신의 독특한 점묘 수법으로 표현하게 되면서이다. 그 이듬해에 작가는 제주도풍경을 소재로 한 <감귤나무 사이로>전을 열었다. 재래식 돌담에 둘러싸인 개량주택, 귤나무가 들어선 과수원, 조랑말이 노는 들판, 눈부신 바다 곁에 조촐히 삶의 둥지를 튼 시골동네 등등. 그러던 중 작가를 주인공으로 한 김선영 감독의 <아티스트>가 감독상을 수상함에 따라 로마 오버룩 국제영화제에 초청되어 이탈리아를 방문하게 되었고 이 기간 동안 소렌토, 토스카나, 아말피 지역을 여행하게 된다. 그리고 이탈리아 여행에서 틈틈이 기록했던 풍경을 기초로 2015년 <아말피 해안으로 가는 길>이란 전시를 소울아트스페이스에서 가졌다. 이때의 전시에선 출렁이는 아말피 해안과 양귀비 꽃밭이 이색적인 토스카나의 전원, 화사한 오렌지 열매들을 명료한 조형감각으로 펼쳐낸 작품들을 발표하였다.

 

근작의 표정들

이번 개인전 역시 여행과 직접 관련된 작품들이 주를 이루게 된다. 작가는 지난해 여름 가족과 함께 했던 유럽 여행의 추억들, 즉 로마와 베니스, 카프리섬, 런던, 파리, 인터라켄, 융프라우 등을 화사한 컬러와 친근한 형태, 그리고 생명감이 충일한 색점으로 직조된 화폭에 담았다.

사실 여행자에게 처음 보는 이국적인 자연환경과 사람들, 건축물들은 눈을 사로잡기에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여행이란 제한된 시간으로 인해 어떤 장소에 대하여 느끼는 행복의 시간은 짧기만 하다. 그림은 우리가 보고 체험한 짧은 순간을 고정시키는 역할로 인해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아왔던 것이 아닐까. 우리의 의식 가운데 여행의 즐거움이 단숨에 끝나버린다면 적어도 그림에서만큼은 그 즐거움의 순간을 빼앗아가지 못할 것이다. 그림 속 어떤 장소에서의 특별한 경험이 화석의 생명체처럼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김덕기가 꾸준히 그가 보고 느낀 것을 그림으로 제작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지 않나 싶다.

이번 전시는 크게 두 유형으로 나뉜다. 하나는 앞서 이야기한 지난해 여행했던 유럽 풍경을 담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국내 풍경을 담은 것이다. 먼저 전자부터 설명하면, 여기에는 <베네치아로 가는 길>, <즐거운 토스카나>, <알프스의 여름>, <나폴리항이 보이는 카프리섬>, <로마의 아침>, <피렌체-아르노 강변의 여름>, <원더풀 베네치아>, <레몬트리가 보이는 아말피 거리> 등이 있다. 각 작품이 저마다 다른 지명을 하고 있는 것은 그가 방문했던 장소와 연관이 있으며 작품에는 그곳의 고유한 건축물이나 자연환경이 잘 나타나 있다. 화면을 물들이는 원색의 물결과 싱그러운 풍정, 동화의 나라에서나 나올법한 환상적인 모습을 보고 있자면 누구나 그곳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들거나 마치 그곳에 와있는 듯한 착각에 사로잡힌다. 그가 붓을 들면 세상이 꿈같은 세계로 변하는 경이로운 사건이 일어난다.

그의 작품에서 장소성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등장인물들이다. 우리는 흔히 여행그림하면 그곳의 지형이나 명소 등만을 생각하기 쉽다. 특별한 지명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런 부분들을 완전히 떨쳐버리기 어려우나 그의 경우는 ‘명소 재현’의 차원보다는 ‘가족 동반’이라는 사실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배 위에서 만세를 부르거나(<카프리섬의 여름>, <원더풀 베네치아>), 공기를 가르며 자전거를 타고(<베니스로 가는 길>), 목초지에서 건초를 나르며(<알프스의 여름>), 한 가족이 힘껏 노를 저으며(<피렌체>), 분수대 주변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로마의 아침>), 고풍스런 건물에서 식사를 하는 것(<레몬트리가 보이는 아말피 거리>) 등은 그가 작품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심지어 <나폴리항이 보이는 카프리섬>처럼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 경우일지라도 빈 의자를 통해 그림의 주인공이 현재 흰 거품을 쏟아내며 요트를 즐기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또한 이번 작품전에는 <즐거운 울릉도>, <원더풀 독도>, <여주-황금물결>, <안동의 봄>, <가덕도-등대가 보이는 바다풍경>, <제주-사려니숲> 등 익숙한 풍경의 작품이 눈에 띈다. 각각의 작품이 담고 있는 내용은 다르나 <여주-황금물결>과 <제주-사려니숲>, <안동의 봄>은 수평구도를 사용하여 자전거를 타고 들판과 숲길을 가르는 가족의 행복한 모습을 실어냈다. 이중에서 <여주-황금물결>은 백호의 대작으로 수많은 작은 도트로 얼개 지어져 있지만 그것이 개별입자로 나타나지 않고 황금빛 들녘을 이루는 ‘무명의 용사’로, 다시 말해 전체의 부분으로 자리매김 되어있다. 가을 어느 날 찬란한 노랑 빛으로 물든 들판을 배경으로 잠자리채와 봉지를 든 아이들 그리고 꽃다발을 들고 뒤를 따르는 아빠와 엄마의 모습이 어울려 자연과 인물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사랑스런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김덕기는 이번 전시에서 의욕적인 작품을 선보인다. 울릉도와 독도, 가덕도를 소재로 한 풍경화인데 특히 <즐거운 울릉도>, <원더풀 독도>의 경우 2백호의 대작으로 창조주가 자연에 물감을 풀어놓은 듯 예쁜 색상이 완벽한 화음을 이루고 있다. 야생화(해당화) 사이로 온갖 종류의 나비가 뛰어놀고, 바다 위로는 갈매기가 우아한 기품을 뽐내고 있으며, 만선의 기쁨을 안고 귀항하는 선박이나(울릉도) 섬에서 헤엄치는 사람들(독도)은 이곳이 어부들의 생활터전이요 근거지임을 일깨워준다. 이번 전시의 백미에 해당하는 두 작품은 김덕기의 경쾌한 화풍을 잘 엿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역사성마저 곁들인 역작으로 손꼽을 수 있을 것이다.

 

행복 코드의 비결

전체적으로 그의 근작은 이전과 견주어 두 가지 차이점을 확인할 수 있다. 그의 회화는 주로 도트와 패턴으로 구성된다는 특성에는 변함이 없으나 한편으로는 즉흥적인 붓놀림의 구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엿볼 수 있다. 대형작품의 경우, 특히 꽃과 잎사귀, 나무줄기와 같은 이미지들 속에서 속도감 있는 붓질이 자주 눈에 띈다는 점이다. 이 부분만을 떼어서 본다면 마치 호흡이 큰 표현주의자의 스타일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색점 하나하나를 찍어가는 방식에서 과감한 터치를 구사하는 등 주도적으로 화면을 이끌어간다는 점은 작가가 보다 적극적으로 회화적인 지층탐사에 나섰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특징은 외광을 통한 명암대비를 들 수 있다. 햇볕이 강렬한 지중해 연안과 색상이 뚜렷한 바다풍경을 소재로 삼으면서 명암대비를 강조하는 경향이 보다 확연해졌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빛의 도입으로, 다시 말해 햇빛이 드는 쪽과 어두운 쪽을 대비시키는 방식은 일련의 작품이 실경에 바탕을 둔 것임을 알려준다. 현장의 공기감과 작렬하는 햇빛의 생명감을 전달하는 한 방식으로 과감히 외광(外光)을 도입하였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여행 기간 동안 익숙지 않는 것에 적응해야 할 때가 종종 일어난다.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의 언급처럼 예술가는 기대감에 찬 상상력으로 생략과 압축을 감행하면서 따분한 시간들을 잘라내어 우리 관심을 곧바로 핵심적인 순간으로 이동시키는 능력을 지닌다. 어떤 면에서 예술이 가치가 있는 것은 생경함으로 인해 놓쳤던 것을 작품을 통해 새롭게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김덕기의 작품은 바로 이런 예술의 잠재력을 잘 엿볼 수 있게 한다.

그러나 김덕기에게 있어 여행은 좋은 작품을 하기 위한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닌 것 같다. 즐거운 여행을 추억하고, 뛰어난 경관을 되새기며, 기꺼이 그런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원동력, 그 동기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그는 ‘가족 덕분에’라고 말할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가 ‘사랑’이라면 가장 소중한 단어는 ‘가족’일 것이다.”(이채)는 말을 누가 부정할 수 있으랴... 작가가 다닌 모든 곳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그 경치를 함께 관람하는 사람이 바로 그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가족이란 데 있지 않았을까. 혼자만의 즐거움도 있지만 즐거움을 공유하면 더 없이 커진다는 것을 그의 작품은 알려준다. 이만하면 그가 누리는 ‘행복 코드’의 비결이 어디에 있는지 충분히 짐작해볼 수 있으리라 본다.

 


 김덕기 < 베네치아로 가는 길> / 서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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