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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기의 ‘행복 편지’ / 서 성 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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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studio 작성일16-09-17 15:53 조회94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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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기의 ‘행복 편지’

서 성 록
안동대 미술학과 교수

 지난 해 세밑 김덕기는 뜻 깊은 시간을 가졌다. 다름 아니라 그를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 <아티스트>가 로마 오버룩 국제영화제에 초청되어 다큐멘터리 경쟁부문 베스트 디렉션상을 수상하였기 때문이다. 영화제 참석차 김덕기는 김선영감독과 함께 로마를 찾았고,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과 함께 수상의 영예를 나누었다.
우리 속담에 “참새가 방앗간을 거저 지나랴.” 라는 말이 있다. 김덕기는 이탈리아 방문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곳 풍경을 화폭에 담았는데 이번 개인전은 바로 그때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찾았던 곳을 테마로 한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홀가분했던 여행 탓일까? 이번 개인전을 통해서 작가는 여행자의 시선으로 대상을 응시하면서 약간 설레는 마음과 흥겨운 기분을 붓 끝에 실어내고 있다.


아말피 해안

 일단 그의 회화는 어떤 유형의 것이든 그가 추구해온 작품세계의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가 ‘가족이 있는 풍경’을 주제로 작품을 해왔다는 것을 상기한다면, 이탈리아를 소재로 한 작품도 역시 이런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이탈리아의 이국적인 풍경에 강한 인상을 받은 듯 사실적인 묘사 위주와 작가의 감흥을 덧붙인 흔적을 얼마간 찾아볼 수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인물이 들어간 풍경화이며, 나들이 나온 가족의 모습에서 그의 회화의 기조를 지켜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즉 기본적으로 이번 작품전은 ‘가족이 있는 풍경’이란 틀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1백호의 대작 <아말피 해안의 아침>은 맑은 공기가 전해져오는 작품이다. 아말피의 조용한 아침을 맑고 투명하게 표현하였는데 화면은 크게 세 단계, 즉 전경과 중경, 그리고 후경으로 구분되어 있다. 전경에는 해안이, 중경은 예쁜 옷을 입은 건물들이 옹기종기 포개져 있고, 포구와 집들을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는 후경은 숲향이 자욱한 산의 정취를 빼곡하게 담아내고 있다.
높은 밀도감을 자랑하는 이 작품은 언뜻 보기에 풍경화같지만 보트에 있는 인물들과 해안가를 걷거나 낚시하는 사람들이 언뜻언뜻 눈에 띄는 것으로 보아 해안의 아름다운 풍경만을 담으려 했다기보다는 천혜의 환경 아래 살아가는 사람들에 주목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은 <눈부신 나의 아말피>에서도 발견된다. 화면은 크게 좌우로 이분화되어 있는데 왼쪽에는 가옥과 교회, 그리고 고성이 들어서 있고 오른쪽은 모래사장을 낀 해변풍경이 시원스레 펼쳐져 있다. 그가 즐겨 구사하는 점묘의 수법을 덜 사용하고 상대적으로 사생에 기운 것으로 미루어 작가는 아말피 해안에 깊은 감명을 받은 것같다. 잔잔한 바다위에 반짝이는 빛들이 쉴새없이 깜빡거리고, 백사장에서 수영을 즐기는 사람들이나 눈부신 에메랄드 빛 바다를 부유하는 몇 척의 보트가 평화로움을 한층 더해준다. 그밖에도 화면 중앙을 가로지르는 선착장 파라솔 밑에서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이나 물에 발을 담군 채 더위를 식히는 연인들, 낚시질하는 가족의 모습이 그림의 활력을 불어넣는다. 세심한 감상자라면 벌써 눈치 챘겠지만 화면 좌측 하단의 꽃밭 옆에 아주 조그맣게 그려진, 집안의 가족 이미지는 이 작품 역시 김덕기의 전체 맥락에서 크게 벗어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포도밭이 보이는 마을풍경>과 <사이프러스 나무 사이로>란 작품은 햇살 가득한 이탈리아 전원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데 <포도밭이 보이는 마을풍경>은 화려한 꽃밭 앞에 펼쳐진 이탈리아 시골 농가와 농경지를 파노라마식으로, <사이프러스 나무 사이로>에는 남유럽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사이프러스 나무 길과 그 주변의 들판을 구불구불한 S형으로 얼개지은 화면구성이 특징적이다. 이 두 작품도 포도밭에서 일하는 인물들의 모습이나 나들이 나온 가족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이들 인물은 화면을 생동감 있게 만들 뿐만 아니라 그의 그림의 주제가 인물(가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음을 보여준다.


가족 이야기

 그의 회화는 그날그날 있었던 일들을 조근 조근 들려주고 있다. 그가 들려주는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가족과 지낸 하루 일과이다. 그러므로 그림 속에는 생활 속에서 작가가 느낀 소감이랄까, 하루 일과가 깨알같이 기록되어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작가가 자신의 생활 단면을 액면 그대로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지는 않다. 그림이란 ‘사실’의 전달 뿐만 아니라 ‘감흥’도 함께 전달하는 속성을 지니므로 어떤 마음의 상태로 나타내는가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그림의 정황으로 볼 때 작가는 감상자가 자신이 느낀 것과 같은 기쁨과 즐거움을 공유하길 바라는 것 같다. 그가 그처럼 인물을 동화적으로 표현하고 현란한 원색과 반복적인 색점의 구사에는 그의 이러한 바람이 들어있다고 볼 수 있다.

“당신이 먼 길을 걷다가 지쳐 힘들다며 어려워하고 지쳐있으면 나는 당신에게 커다란 아름드리나무를 보여주며 쉬어 가라고 손짓하겠습니다. 그때 당신이 그 나무 그늘아래서 잠시 쉬며 자신을 돌아보며 무언가를 느끼고 깨우치는 것이 있다면 나는 더 이상 당신을 미련한 사람이라고 부르지 않겠습니다.”
(작가노트 중에서)

그의 작품에 흐르는 것을 한마디로 요약하기란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회화의 기조를 말한다면, ‘행복의 유통’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마티스가 자신의 그림이 쉼을 주는 ‘안락의자’가 되기를 원했던 것처럼 김덕기는 자신의 그림이 사람들에게 포근한 ‘안식처’가 되고 삶의 진실한 부분을 감상자와 함께 공유하기를 바란다.
그런 점에서 김덕기가 추구하는 것은 ‘즐거운 나의 집’ ‘사랑을 나누는 공동체’일지도 모른다.자신이 위기의 늪에 빠졌을 때 “왕이건 농부이건 자신의 가정에 평화를 찾아낼 수 있는 자가 가장 행복하다”(괴테)는 말처럼 우리는 가장 먼저 행복을 가정에서 찾는다. 그러므로 가정의 붕괴는 사회 전체의 위기로 연결된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행복의 유통을 회화기조로 삼고 있는 작가가 가정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음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화목의 열매

 김덕기는 지금까지 한 가지 목소리를 내왔다. 그것은 우리가 속한 가정과 사회를 사랑의 공동체로 꾸려가자는 목소리였다. 그렇게 한 가지만 고집해온 것은 레퍼토리가 빈약하거나 상상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가족의 문제가 그만큼 절실하다는 판단에서이다. 특유의 톡톡 튀는 개성과 정채로움이 감상자들을 즐겁게 해준 탓도 있겠으나 많은 사람들이 그의 작품이 지닌 주제의식에 공감을 표시해주었고 이에 힘입어 작가는 오늘도 자신의 작품 주제를 굳건히 지속, 심화해 가고 있다.

그의 그림이 우리에게 호소력을 갖는다는 것은 우리의 현실이 그만큼 밝지 않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의 그림에 눈길이 가는 것은 우리가 그림에서 보는 것과 같은 소소한 행복의 목마름을 갖고 있다는 표시이다. 작가는 우리 삶이 찬란함으로 직조되기를 바라는 염원에서 오늘도 작품에 매진하고 있다. 그림 한 점을 완성한다는 것은 곧 감상자에게 희망을 선사한다는 것과 같다는 신념으로 작업에 임하고 있다. 화목의 열매가 우리에게 보다 풍성하고 온전한 삶을 선사하듯이 그의 작품은 우리를 삶의 긍정성, 즉 유쾌함과 발랄함으로 채운다.

No.: 23, Read: 19, Vote: 0, 2015/11/17 01: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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