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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긍정하는 힘, 행복을 파종하는 그림 / 고충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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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studio 작성일16-09-17 15:49 조회21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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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속 웃음소리 The sound of smile in the sky, 2010, Oil pastel, acrylic on canvas, 112X162cm
 [개인소장 . Private Collection]
 


김덕기의 회화

 삶을 긍정하는 힘, 행복을 파종하는 그림

 고충환(미술 평론)


흔히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거의 예외 없이 감동적인 드라마를 만날 수가 있고, 그 내용이 따뜻하고 풋풋한, 그래서 온기마저 느껴지는 영화들을 볼 수가 있다. 그 영화들에는 전형적인 장면이 나온다. 일가친척들이 모여 크리스마스트리를 꾸미며 담소하거나 식탁에 둘러앉아 정겹게 식사를 하는 장면이다. 식탁에는 대개 촛불이 켜져 있고, 그 옆에는 아직 뜯지 않은 선물 꾸러미가 놓여 있다. 그 장면은 대개 함박눈이 내리는 어두운 거리를 배경으로 느리게 줌 인해 들어가는 식으로 불 밝힌 창문을 보여준다. 이때 창문 안쪽 정경은 어두운 거리와 대비되면서 실제보다 더 따뜻해 보이고 온화해 보인다. 적어도 이 장면에서만큼은 심지어 함박눈마저 부드럽고 포근해 보인다.
그리고 나는 불현듯 이방인이 된 것 같은 소외감을 느낀다. 생각해보면 나는 창문 안쪽보다는 어두운 거리에 더 자주 서 있었던 것 같고, 창문 안쪽 세상은 그저 남의 일이려니 생각했다. 영화니까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고, 세상이 험악할수록 영화는 오히려 더 아름답게 그려지기 마련이라고도 생각했다. 그래서 세상을 긍정적이고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그 시선으로 세상을 따뜻하게 보듬는 비전이 나에게 아직은 낯설고 어색하다.

김덕기의 그림이 그랬다. 그의 그림은 흡사 크리스마스카드 같고 축제 같고 폭죽 같다. 그 그림에선 부드럽고 달콤한 감미로움으로 행복하게 해주는 크림 빵 맛이 날 것 같다. 이건 절대 현실일 수가 없어. 나는 지금 크리스마스카드 속에 들어온 거야. 나는 지금까지 도대체 이 만큼이나 삶을 긍정하고 찬미하는 그림을 본 적이 없다. 순수하다 못해 순진하고 천진한 비전을 만난 적이 없다. 그의 그림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아니면 진즉에 포기했던, 아니면 일부러 시선을 외면했던 행복 쪽으로 나의 시선을 돌려세우고 있었다.

꽃보다 아름다운 당신을 만나 고맙고, 나를 믿어줘서 고맙고, 항상 내 곁에 있어줘서 고맙다. 애기를 낳아줘서 감사하고, 애기가 별 탈 없이 무럭무럭 자라줘서 감사하고, 애기가 좀 더 큰 다음에는 같이 노는 모습을 보고 둘이 똑같다고 핀잔을 주는 당신의 모습이 가슴을 뛰게 한다. 당신이 꽃밭에 물을 주는 모습이 아름답고, 강아지와 공놀이하는 애기의 모습이 아름답고, 모처럼의 가족나들이가 고맙고 감사하고 코끝이 찡해져올 만큼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도대체 살아가면서 감동받을 일이 별로 없을 것 같은데, 작가는 가족에게서 매일같이 감동 받고 있었고, 순간순간 삶의 의미를 수혈 받고 있었다.
그래서 그림은 어린아이처럼 순진하고 천진해진다. 나는 샤갈 그림에서처럼 하늘을 붕하고 날아올라 당신에게 꽃다발을 바치고, 영화 시네마천국(아니면 ET)에서처럼 애기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하늘 길을 밟는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처럼 새들끼리도 마주보고, 어항 속 금붕어마저 서로 입을 맞춘다. 그리고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자기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해님도, 달님도, 별님도, 꽃님도, 심지어는 자동차와 집마저도. 강아지와 새들도 저마다의 표정을 가지고 있는데, 자세히 보면 웃는 강아지와 새의 속눈썹이 여실하다. 작가의 그림대로라면 세상의 모든 것이 저마다의 얼굴을 가지고 있고, 표정을 가지고 있고, 그 표정은 거의 예외 없이 웃는 표정일 것 같다.

미국의 시인 마가렛 와이즈 브라운의 시에 이런 시가 있다. 잘 자요 달님, 잘 자요 달을 뛰어넘는 암소그림, 잘 자요 빗, 잘 자요 생쥐 등등 방안의 사물들을 하나씩 설명해가면서 엄마가 아기에게 읽어주는 시다. 동화책에서 흔히 볼 법한 정황이 그려지고 있지만, 세상을 향한 마음의 문을 열면 빗은 물론이거니와 암소도 아닌 암소그림에게마저 잘 자라고 인사할 것도 같다. 세상을 향해 마음의 문을 연다는 것, 마음의 눈 곧 심안으로 세상을 본다는 것, 순진하고 천진한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본다는 것은 이처럼 세상을 천지개벽하게 해주는 사건이다. 천지개벽이 쉬운 일이 아니지만, 김덕기의 그림에서는 매일같이, 순간순간 천지가 개벽되고 있다. 그리고 작가로 하여금 그렇게 천지를 개벽하게 해주는 계기는 말할 것도 없이 삶을 긍정하는 힘이며, 삶을 찬미하는 노래며, 삶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열린 시선이다.

이처럼 삶을 긍정하고 찬미하는 그림이 다채로운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런 일이다. 나는 이토록 삶을 긍정하고 찬미하는 그림을 본 적이 없는 만큼, 이렇게나 다채롭고 컬러풀하고 원색적이고 현란한 색채의 그림을 본 적도 없다. 보통의 그림에서 원색은 꺼려지기 마련이고, 조심스런 감각으로 조율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작가의 그림에서 원색은 실제로는 감각적으로 조율된 것이겠지만, 적어도 외관상 거침이 없고 분방하다. 그의 그림에서 현란한 색채는 그대로 삶을 긍정하는 힘에 등치되며, 따라서 원색을 꺼린다는 것은 곧 삶을 주저하는 것에 등치되는 것으로 보인다. 다채로운 색채는 곧 작가에게 천지가 매일같이 갱신되고 있다는 증거이며, 적어도 마음속에서만큼은 매순간 재생되는 삶을 살고 있다는 말과도 같다. 어쩌면 행복한 사람만이 이처럼 매일같이 다른 아침을 맞고, 매순간 다른 밤을 살 수가 있을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이런 다채로운 색채는 상대적으로 좀 잦아든 것 같다. 그렇다고 행복의 배터리가 약해진 것 같지는 않고, 순전히 형식적인 이유 때문인데, 바로 라인 드로잉 시리즈다. 주로 파스텔 톤의 부드럽고 우호적인 느낌을 주는 모노톤의 화면 위에 라인으로만 그린 그림들이며, 색채보다 라인이 더 두드러져 보이는 그림들이며, 평면성이 강조돼 보이는 그림들이다. 집 위에 집이 포개지고, 집 옆에 집이 열거돼 집들이 그림 가득히 그려져 있는데, 작가가 유년시절의 아름다웠던 추억을 되불러낸 것이며, 행복한 현재를 재현한 것이며, 꿈꾸는 미래를 소망한 것이다. 첩첩이 중첩된 집들은 말하자면 그대로 시간의 결 혹은 지층에 해당한다. 그리고 작가는 그 시간의 지층을 열어 행복의 씨앗을 캐내거나 흩뿌려놓고 있다. 그리고 때로는 단독작품으로 제시되기도 하고, 더러는 개체들이 모여 일종의 풍경조각을 예시해주는 일련의 세라믹 작업에서 그 행복의 씨앗은 또 다른 형태로 파종되고 있는 것이다.

김덕기는 행복한 사람인 것 같고, 그래서 부럽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사람 사는 모습이 어슷비슷할 것이고, 작가 역시 예외일 수는 없다. 유별나게 행복해서 행복하지는 않다는 말이다. 그의 그림을 보면서 행복은 노력하고 개발하고 캐내고 보존해야 할 그 무엇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작가의 그림은 바로 그 자기최면이며 자기주술을 선물로 준다.

2011, The Sound of Smile in the Sky, Soul Art Space, Busan

No.: 14, Read: 112, Vote: 0, 2012/03/28 12:5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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