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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기, 가족이 만들어가는 행복 이야기 / 서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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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studio 작성일16-09-17 15:48 조회27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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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기, 가족이 만들어가는 행복 이야기

 서성록(안동대 미술학과 교수)




‘가족그림’ 명화 중에 한 점을 꼽는다면, 필자는 주저 없이 <목공소에 있는 거룩한 가족>(1645)을 들 것이다. 렘브란트가 완숙기 때 제작한 이 그림은 바로크 회화의 특징인 키아로스쿠로가 뚜렷할 뿐만 아니라 현란한 솜씨로 등장인물을 재현하였다. 이 그림은 평강과 기쁨이 넘쳐흐르는 거룩한 가족의 복된 모습을 표현하여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마리아는 성경을 읽다 말고 나뭇가지로 엮은 요람에서 잠자는 아기예수를 돌보는데 여느 어머니처럼 아이에게 불빛이 들지 않도록 모포로 얼굴을 살며시 가려준다. 뒤편의 요셉은 허리를 숙여 목공작업에 열심이다. 목수인 요셉은 자신의 본분을 다하는 성실한 가장이라는 인상을 준다. 게다가 렘브란트는 천사들을 아기 예수와 같은 또래로 설정하여 그림 분위기를 한층 정겹고 사랑스럽게 만들어주고 있다. 구도상으로는 왼편의 천사로부터 시작하여 요셉, 마리아를 거쳐 예수까지 이어지는 호형구도를 통해 감상자의 시선이 아기예수에게 맞추어지도록 의도하였다.
‘가족그림’은 우리나라에서도 이중섭, 장욱진, 이만익 등 몇몇 화가들의 작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중 이중섭은 가족과 헤어진 뒤 그들과의 행복했던 시절과 이별, 그리움을 화면에 담았다. 남다른 가족애가 이중섭만의 독특한 작품세계와 그만의 독보적인 은지화를 탄생시켰다.
그 점에서는 장욱진도 뒤지지 않을 것이다. 이중섭의 그림이 가족에 대한 향수와 그리움이 짙게 배어 나온다면, 장욱진의 그림은 소박파의 그림을 방불케 한다. 가족은 오두막과 초가집, 원두막, 정자와 함께 등장하고 주위에는 나무와 강아지, 둥근 달, 까치가 이웃하여 한층 따듯함을 더한다. 웃음소리가 들리는 행복한 가족의 단면을 엿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평범한 시골동네를 들여다보는 듯 정겹고 소박한 느낌을 준다.
이만익 역시 주된 작품으로 가족그림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가족 주몽>, <여인>, <가족도―고향>, <가족도―꽃밭에서>, <가족도―동백섬>, <가족도―여름날>, <가족도―달꽃>, <들길에 앉아> 등. 사진을 찍듯이 포즈를 취한 양식화된 그림에서부터 엄마와 아기가 소를 타고 귀가하는 풍경, 아이들이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과실수에 올라 함박웃음을 짓는 활기찬 모습의 그림도 있다. 이만익은 진한 윤곽선으로 형태를 두르고 오방색으로 토속적인 분위기를 살려내고 있다.
가족그림에 꼭 낙천성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시대의 비극으로 인한 슬픈 가족사의 그림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동표는 북녘에 두고 온 어머니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황유엽과 홍종명 역시 가족에 대한 애끓는 마음을, 황용엽 또한 이산가족의 애환을 표현하고 있다. 북녘에서 자유를 찾아 남하한 이들 화가들은 가족의 이별과 그 슬픔을 단순한 관찰자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피해자의 입장에서 기록하고 있다. ‘물감’으로 그렸다기보다 뚝뚝 떨어지는 ‘눈물’로 그렸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지 모른다. 깊은 애환이 스며든 이들의 그림을 보면 나도 모르게 옷깃을 여미게 된다.
가족이란 직장처럼 일터도 아니고 소정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모인 집단이 아니다. 그것은 혈연으로 묶인, 끈끈한 사랑의 띠로 연결된 결사체이다. 인류가 존재하는 한 가족이란 그 가치가 바래지 않을 것이며 가족그림 또한 마찬가지로 그 의미가 강조되면 되었지 결코 축소되지 않을 것이다.

사랑의 보금자리
 이런 소중한 가족을 소재로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또 한명의 화가가 있다. 그가 바로 이 글의 주인공인 김덕기이다. 그는 화단에 등단한 뒤 지금까지 줄곧 가족이란 울타리를 떠나본 적이 없다. 결혼과 더불어 시작한 가족그림이 그의 작품세계를 대변하는 것으로 확실히 자리를 굳혔다. 가족은 그림을 그리는 이유이자 활력의 발원지이다.
사실 평범하고 가까운 것을 우리는 무심코 지나치기 쉽다. 가족의 존재가 그러한데 가족의 개념은 너무 실제적이어서 우리 피부에 잘 와 닿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사람도 가족을 떠나서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누군가의 사랑과 축복을 받아야 하는 연약한 존재 또는 외롭고 고달픈 인생길을 가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더 말할 나위 없이 소중하다.
나무에겐 뿌리가 있듯이 인간에겐 누구나 조상이 있다. 부모가 있고 그 위로는 조부모, 증조부모, 고조부모가 있게 마련이다. 부모는 우리의 출발점이자 둥지인 셈이며, 부모 곁을 떠나서 죽을 때까지 우리는 가족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죽을 때까지 가족과 평생을 함께 한다. 가족은 기쁠 때 같이 기뻐하고 슬플 때 함께 슬퍼하며, 힘들고 지칠 때 ‘따듯한 위로’와 ‘넓은 가슴’을 제공해준다. 그런 까닭에 ‘집’이 보금자리가 아니라 ‘가정’이 진정한 보금자리요 안식처가 되는 셈이다.
‘가족의 행복을 전달하는 화가.’ 필자는 김덕기를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그의 그림을 보면 정말 우리가 원하는 행복을 소망하고 있고, 또한 그 기쁨을 전달하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행복은 아득히 먼 훗날 성취할 꿈이 아닌, 어디까지나 현재진행형의 드라마로 제시된다. 10년 전 흑백의 수묵으로 제작한 <부부>(1999)는 두 꽃병에 꽂힌 꽃을 부부의 사랑으로 의인화하였고, <인생의 기쁨>(1999) 역시 두 개의 찻잔과 가운데에 작은 찻잔을 배열하여 가족애를 상징하였으며, <사랑-부부>(1999)는 한 쌍의 비둘기가 서로의 눈빛을 마주하는 정겨운 장면을, <아버지와 아들>(1999)은 아버지가 아들을 등에 태우고 장난치는 모습을, <무거운 눈꺼풀>(2000)은 잠자는 아이들을 안고 있는 장면을, <여행>(2002)은 가족의 여행 추억을 담담한 수묵으로 표현하였다. 작가는 대학을 졸업한 무렵부터 지금까지 가족을 레퍼토리로 삼아 작업을 해오고 있는데 이렇듯 그에게 가족은 삶의 중심을 이룰 뿐만 아니라 회화의 원천으로 자리 잡고 있다.(도판1, 2, 3, 4, 5 *도판 1의 좌우는 참고도판을 참고할것!)

“작은 집이지만 가꿀 수 있는 꽃과 나무들이 있어 만족하다./ 부유하지 않지만 나를 믿어주는 아내와/ 아빠와 엄마를 사랑하는 아들이 있어 감사한다./딱딱하고 차가운 외부의 도전들이 조간신문처럼 찾아오지만/ 꽃피우고 떨어지는 사이에 어떤 것은 사라지고 어떤 것은 훨씬 작아진다./ 오늘도 파란 하늘과 흘러가는 구름을 볼 수 있어 감사하다.”

그가 선택한 모티브는 가족과 가족의 생활이다. 어찌 보면 특별한 게 없는 일상적인 줄거리이다. 아빠 품에서 곤히 잠든 아이, 물장구치는 아이, 교회 가기, 연못가의 가족, 시소놀이, 달콤한 꿈, 공원에서 한가로이 노니는 비둘기, 나들이, 시골길, 휴일의 즐거움 등이 화면을 화창하고 발랄하게 물들인다. 우리는 그의 그림에 발걸음을 멈추고 훈훈한 이야기에 마음을 빼앗기게 된다. 그는 행복한 삶의 정경에 시선을 고정하며, 이것을 작가는 은은한 감동으로 실어낸다.
그의 그림에는 ‘응달’이 없다. 흡사 눈이 부신 아름다운 아침의 햇살이 영롱하게 빛나듯이 반짝인다. 수만 개의 섬광을 가진 햇빛을 받아 수면 위에 움직이는 호수의 수정조각처럼 그의 그림은 기쁨과 생명으로 충만하다. 계절의 엇갈림 속에서도 가족의 화목을 묘사한 <봄>, <여름>, <가을>, <겨울>(이상 2006)을 비롯하여 <즐거운 저녁>, <나무 아래서>, <함께 춤을 추어요>, <무지개>, <정원 가꾸기>, <봄봄>, <어느 풍성한 가을날>, <스위트홈> 등이 있는데 모두 웃음꽃이 피는 가족의 행복한 순간을 담고 있다. (도판6, 7, 8, 9, 10)
김덕기의 그림 중에서 특별히 기억되는 작품은 바로 <보름―본향을 생각하는 나그네>(2001)란 채색화이다. 수박처럼 둥그런 달이 지붕 위에 어슴푸레 빛나고 있으며 주위는 정적과 어둠에 휩싸여 언제 올지 모르는 아침을 기다린다. 이 작품은 그가 시련의 골짜기에 낙오되어 곤경에 처했을 때 제작한 그림이다. 이 작품은 작가가 난관에 봉착했던 시절 은혜의 손길을 간절히 기대하면서 제작한 것이라고 한다. (도판11)
김덕기는 단란한 가족과 함께 지금 행복하게 살고 있지만 늘 오늘과 같았던 것은 아니다. 그는 고등학교와 대학시절 독학을 하며 어렵게 지냈다. 성경의 시편 기자가 고백했듯이 그는 한때 ‘광야의 올빼미’요 ‘지붕 위의 외로운 참새’와 같은 나날을 보냈지만 고난의 깊이가 깊어질수록 감사의 깊이도 더욱 깊어진다는 사실을 배웠다. 어두운 터널을 통과한 뒤에 만나는 광명한 햇살은 그래서 한층 고마운 것이다. 그를 힘겹게 했던 난관이 눈 녹듯이 녹아버린 뒤 가슴속에 잠자고 있던 기억을 작가는 끄집어냈다. 작가는 그 시절을 다음과 같이 아름답게 묘사한 바 있다.

“어느 날 당신은 봄날의 비처럼 내게 찾아와 간지럽게 날 깨웠지/어느 날 당신은 여름의 태양처럼 내게 찾아와 뜨겁게 날 안았어/ 어느 날 당신은 가을의 바람처럼 내게 찾아와 급하게 날 사랑했지/어느 날 당신은 겨울의 눈처럼 내게 날아와 강하게 날 덮어주었어/웃음소리 가득한 생의 한가운데를 당신과 함께했지…”

그가 고난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위의 시에서 보듯이 저항할 수 없는 ‘봄날의 비’ 같은 촉촉한 사랑, ‘가을의 바람’ 같은 감미로운 체험이 있었기 때문이며, 이러한 체험은 작가가 꿋꿋하게 앞날을 헤쳐 가는 데 밑거름이 되어주고 있다. “내가 영원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기에 인자함으로 너를 이끌었다”(렘 31:3)는 사랑의 메시지는 큰 충격으로 다가와 그의 마음판에 깊이 새겨졌다. 이런 신적인 사랑을 깨달은 뒤로 그에게 신앙과 예술은 금슬 좋기로 소문난 한 쌍의 원앙새처럼 서로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가 되어버렸다.

당우리에서 생긴 일
 그의 작품이 좀 더 풍성해진 것은 2000년대 중반으로, 여주의 당우리로 작업실을 옮긴 직후부터다. 틈틈이 작업을 해온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않고 그간 재직해오던 교사직조차 내려놓고 그의 고향으로 내려간 것이다. 작업실을 옮기면서 언제 그랬냐는 듯 빠른 속도로 시골생활에 동화되어갔으며 한동안 그는 외부와의 소통도 잊은 채 작품에 전념했다. 작업실 이전이 단순한 이사 차원이 아니라 왕성한 창작의 불길을 지피는 계기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여주에 내려가면서 그림에도 모종의 변화가 생겨났다. 온화하고 내밀한 분위기에서 그림에 밝은 표정이 솟아났고 전에는 찾아볼 수 없던 마티에르가 돌기(突起)처럼 튀어올랐다. 무엇보다 그림의 속도감 같은 것도 느껴진다. 짧게 찍어 붙인 것 같은 터치가 화면을 메워간다. 단순한 터치라고 보기 어려운 색점들인데 그것은 잔디나 정원의 꽃, 들판을 장식하는 조형적 요인으로 자리하고 있다.
 <행복한 나라>(2008)는 이런 점을 잘 나타내준다. 화면은 예쁜 집 앞에 여러 아이들이 환호하면서 아빠, 엄마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갖는 줄거리로 되어 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색점과 패턴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붕은 청색과 오렌지, 혹은 은색으로, 벽돌은 사각형의 패턴으로, 가족이 쉬고 있는 잔디는 연둣빛과 청록, 빨간색의 점들로, 그리고 정원을 장식한 꽃들은 둥그런 원색으로 자리 잡고 있다. 색점과 패턴이 없는 것은 하늘과 사람뿐이며 그 밖의 이미지들은 화려한 장식들로 이루어져 있다. (도판12)
 <꽃은 만발하고>(2009) 역시 찬란한 색점들로 반짝이는 작품이다. 자전거를 배우는 아이를 소재로 한 이 작품은 집과 마당, 나무와 정원을 깨알만 한 색점들로 채우고 있다. 거기에다 오렌지와 분홍, 초록, 핑크빛이 어우러져 마치 화려한 불꽃축제를 벌이고 있는 느낌이다. (도판13)
당우리에서 생긴 변화는 단지 점잖은 먹에서 화려한 오일과 아크릴로 바뀐 것만은 아니다. 외관상 드러나는 재료의 변화도 크지만 실질적인 변화의 요인을 들자면 거주환경이 바뀐 데서 찾을 수 있으리라 본다. 집 뒤로는 수목이 우거지고 앞으로는 시원스레 논밭이 펼쳐진 한적한 마을인 여주 당우리에 온 소감을 작가는 다음과 같이 시로 기록하였다.

“당우리/어느 하늘 아래/나의 작은 아뜰리에/소나기/천둥/뜨겁게 타는 태양//
초콜릿빛 알밤과/까치 발톱 아래 노랑 감이/보이는 곳//빙글빙글 돌아가는/밤하늘 그 수많은 별들// 그 이야기는/ 아주 아득하고 감미롭게/나의 작은 아뜰리에 위에서/아는 듯 모르는 듯/빛을 내며 속삭인다”

도시에서는 좀처럼 만날 수 없었던 자연의 싱싱함을 매일 접하면서 작가는 자신의 내면에 오랫동안 잠자고 있던 감성을 일깨우지 않았나 싶다. 들판에 핀 꽃의 찬란함과 아름답고 진귀한 풍경은 캔버스에 고스란히 담겨졌다. 스튜디오 마당과 들길에서 접하는 백일홍과 과꽃, 해바라기, 맨드라미, 공작꽃, 채송화, 패랭이꽃, 사루비아, 나팔꽃, 봉선화, 여러 빛깔의 고운 장미들, 달리아, 글라디올러스, 박꽃, 금잔화, 접시꽃 등이 환한 미소를 짓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정원에 심겨진 멋진 몸매의 나무들도 자주 눈에 밟힌다. 매실나무, 자두나무, 라일락,사철나무, 공작단풍, 청단풍, 황금송, 소나무, 호두나무, 측백나무, 감나무 등등. 작은 환경의 변화가 화풍의 변화를 몰고 온 셈인데 그림이 ‘색의 잔치’를 벌이는 것처럼 떠들썩할 뿐만 아니라 알알이 박힌 색점들은 빛을 머금고 쨍쨍하게 살아난다. 화면은 어느덧 빛이 산란하는 공간이 아니라 색의 물결이 술렁이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노랑과 초록, 그리고 분홍이 어울리는가 하면 붉은 지붕에 파랑 도트가 깔리고 청록색 나무에는 새빨갛고 황금빛이 나는 과일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색대비 정도가 아니라 엄청난 굉음을 내고 터져버린, 화려한 색의 파편들이 화면에 즐비하게 널려 있다는 인상이다.
이와 같이 여주로 오면서 그림에 ‘화색’이 돌고 소재도 한결 풍부해졌다. 위에서 말한 다양한 나무와 꽃 이외에도 정원, 사다리, 벤치, 눈사람, 꽃길, 파라솔 등이 등장한다. 체육공원에서 축구시합을 하는 동네 주민들과 개천에서 투망으로 물고기를 잡는 농부들도 등장한다. 화면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활기차고 기운이 넘쳐난다. 신나게 줄넘기를 하고 화분에 물주고 정원을 가꾸는 가족, 초록빛 잔디에 앉아 단란한 시간을 보내는 부부, 개천에서 물장구치는 아이들, 자전거 타는 모습, 소풍 등등. 이런 모티브들은 꾸며낸 것이 아니라 주위에서 목격한 일들을 기초로 한, 실생활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며, 그런 점에서 작가의 그림은 그날그날 있었던 일들이나 느꼈던 일들을 기록하는 다이어리에 견줄 수 있다. 필자의 짧은 생각인지 모르지만 그가 시를 짓는 것이나 그림을 그리는 것이나 생활에서 영감을 얻고 있기에 기본적으로 큰 차이는 없는 것 같다. (도판14, 15)
그의 그림을 보면, 이전에 읽은 적이 있는 이해인 시인의 「나의 섬에는」이란 작품이 떠오른다. “내 마음의 섬에는 고운 시들이 많지//별과 달과 구름을 닮은/다양한 언어들이/계절마다 피지//이렇게 섬에서/혼자 행복해도/되는 것일까?” 시인의 섬이 마음에서 피어난 것이라면, 김덕기 작가의 즐거움은 생활주변에서 피어난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빙긋이 웃으며 자신에게 걸어오는 삶의 다양한 무늬들과 언어들을 풍부한 감성으로 포착하는 공통점을 지닌다.(도판16)
그의 작품은 구름 한 점 없는 날씨처럼 해맑고 어떤 면에서는 천진난만하다. 누구나 쉽게 수긍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어서 더욱 흥미롭다. 반대로 생각하면 그의 작품은 지극히 평범하다. 등장하는 꽃도 그렇고 가족도 그렇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주위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들이다. 중요한 것은 이런 이미지들이 가져다주는 힘인데 가족 해체가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로 대두된 시점에 작가는 역설적으로 가정의 중요성을 환기시킨다. 불화 가운데 있는 가족, 상처의 골만 남긴 채 이별한 가족, 부모를 잃은 사람들, 위기에 봉착한 사람들에게 이 작품이 던지는 의미는 각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는 마치 풀무질을 하듯이 기운을 불어넣고 위로의 손길을 보낸다. 샘솟는 활기와 푸짐한 쉼과 따듯한 위로는 그의 그림이 제공하는 또 하나의 보너스인 셈이다. 한 점의 그림이 사람들에게 이렇듯 ‘그윽한 향기’와 ‘시원한 그늘’을 제공한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작가의 그림에 우리의 시선이 최면당한 사람처럼 순순히 따라갈 수밖에 없는 것은 가정의 소중함을 환기시키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 삶의 기초를 이루는 가족의 중요성을 주지시킴으로써 작가는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행복의 세계로 초대한다.


오늘의 미술가를 말하다1 (아르코 미술 작가론, 50인 선정)





작가 김덕기
 김덕기는 1969년 여주에서 태어나 1993년 서울대학교 동양화과를 졸업한 뒤 전업화가로서 왕성한 작품활동을 펼쳐오고 있다. 주요 개인전으로는 덕원미술관에서 가진 《시간, 세월, 인생, 나이》(1998)를 비롯하여 《내안에》(아트사이드갤러리,2000), 《가족일기》(갤러리 사비나, 2001), 《세 그루의 나무》(포스코미술관,2002), 《집으로》(두아트갤러리, 2004), 《김덕기 & 세라믹》(한향림갤러리, 2007), 《즐거운 우리집》(갤러리현대 강남, 2008) 등이 있다.
주요 단체전으로는《일상의 미술》(대전시립미술관, 2004), 《프랑크푸르트 북 페어》(프랑크푸르트, 2005), 《전통과 시대정신―한국 현대미술의 흐름전》(뮌헨, 2005), 《고요의 숲》(서울시립미술관, 2006), 《가족보듬기 패밀리 펀》(광주시립미술관, 2007) 등이 있다.
김덕기는 소소한 일상의 다양한 무늬들과 표정을 풍부한 감성으로 풀이하고 있다.

필자 서성록
 서성록은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와 동대학원 미학과를 졸업하였으며, 미국 동서문화센터 연구원을 지냈다.
주요 저술로는 『한국현대회화의 발자취』,『한국의 현대미술』,『렘브란트의 거룩한 상상력』,『동서양 미술의 지평』,『현대미술의 쟁점』,『미술의 터치다운』, 『박수근』,『박서보』, 『렘브란트』, 『미술관에서 만난 하나님』, 등이 있으며, 공저로는 『북한의 미술』,『우리 미술 100년』이 있다. 수상 경력으로는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1985), 월간미술 미술평론부문 대상(2001), 한국미술저작상(2006),대한민국기독교미술상(2010) 등을 수상했다. 현재 안동대학교 미술학과에 재직 중이며, 한국미술평론가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No.: 13, Read: 109, Vote: 0, 2012/03/28 12:5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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