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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이 천사를 나에게 보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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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studio 작성일21-04-22 01:22 조회32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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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향을 생각하는 나그네_순지에 수묵채색 142x73cm 1999 김덕기作




누가 이 천사를 나에게 보냈을까?


1998년 첫 전시회를 마치고, 나의 영원한 여인을 평생의 동반자로 맞았다.
경기도 여주의 한 마을회관 창고를 작업실로 쓰고 있던 때도 아내는 가난한 화가의 누추한 행색을 별 상관하지 않았다.
이미 그녀를 사랑하고 있던 나는 어느 날, 그녀의 수첩 속에 내 그림 사진들이 가득한 것을 보고 가슴이 찡했다.

당시 대학원생이던 아내의 아르바이트 월급과 나의 새벽 조간신문 돌리기에서 나오는 용돈이 우리 생활비의 전부였다.
그림을 팔아 생계를 꾸려야 하는 처지였지만, 새파랗게 젊은 화가의 그림을 누가 쳐다보겠는가?
그러나 아내는 내가 의기소침해 있으면 전시장을 함께 거닐며 ‘당신도 이 화가처럼 할 수 있다’고 내게 새 도전을 꿈꾸게 했다.

보름달이 뜬 이른 새벽, 신문을 돌리며 하나님께 눈물로 기도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삶은 아름답고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그림을 통해 보여 주게 해달라고, 그림을 팔아 생활하게 해달라고.
미술학원 강의, 신문 돌리기, 삽화 그리기, 문화재단 후원금 신청하기…… 미술과 관련된 생업이 있다면 어디든 즐거운 마음으로 달려갔다.
그러던 어느 날 찾아온 아내의 임신 소식. 나는 그동안 그림 속에 담았던 어려운 미술이라는 관념을 넘어 아내와 아들과 함께하는 소소한 생활의 이야기, 우리의 사랑과 인생 이야기를 그림에 등장시키면서 삶을 아끼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만삭인 아내의 배 위에 귀를 기울이면 힘차게 발길질하는 녀석의 익살이 전해 왔다.
일찍이 조실부모한 내게 이런 행복한 선물은 삶에 기적을 불러왔다.

작지만 사랑의 싹을 트게 하는 우리의 평범한 일상이 그림의 소재가 되면서 내 그림은 좋은 평과 함께 팔리기 시작했고 주요 미술관에도 소장되었다.
전시장에 그림을 내보내기 전, 나는 꼭 아내에게 먼저 보여 준다.
아내는 미술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내 그림만큼은 어느 누구보다도 잘 안다.
나의 영원한 사랑, 나의 진실한 친구! 누가 사랑스러운 이 천사를 내게 보냈던가!





김덕기_화가


월간 작은 숲 | 나의 아내 나의 남편
[2007년 5월호]







No.: 128, Read: 365, Vote: 0, 2007/07/15 22:2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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