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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장미 이야기 - 김덕기 Red Rose's Story - Kim Duk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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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studio 작성일21-04-08 18:13 조회52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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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장미 이야기 - 김덕기

Red Rose's Story - Kim Dukki



초록 잎사귀에 붉고 아름다운

넝쿨 장미가 춤을 추며 피어오르는

나의 유년 시절 시골마을의 추억 하나


푸르른 풀 내음 사이로 붉은 피 같은

꽃망울이 터지는데... 우리 집과 우리 동네는

온통 달콤하고 진한 이 꽃의 향기로 뒤 덮인다.


축축한 풀 삼을 가득 담은 지게와 씨름을 하며 고개를 넘으시는 병철이네 아저씨

빠른 걸음을 재촉하시며 5일장을 보시고 집으로 향하시는 미향이네 아줌마

옹기종기 모여 정들어 살아가는 작은 마을 이웃 사람들의 얼굴이 그리워진다.


담장 밖으로 고개를 내밀며 인사하는 해바라기, 그 아래 나팔꽃과 맨드라미

집집마다 앞뜰과 뒤뜰엔 꽃향기가 가득 했지... 백합화, 과꽃, 채송화, 분꽃

따사로운 햇살과 신선한 바람을 타고 날아오는 작은 생명들...
나비, 꿀벌, 여치,사랑방 굴뚝과 땅콩을 저장하는 창고의 기와지붕 사이에는

언제나 아가 주먹만한 거미가 하얗고 팽팽하게 틀은 자기 집에서

우리를 기다리며 우리를 깜짝 놀라게 했지...


학교를 파하고 개울 위 큰 다리와 수로 위 작은 다리를 건너 마을 어귀 들어서면

나보다 큰, 어른 키만한 코스모스가 우리의 작은 몸을 감추며 말을 걸어왔지

겨드랑이를 간지럽게 하는 부드럽고 여린 코스모스 이파리로 가발과 콧수염을 만들었어


족대를 갖고 둘째 형과 작은 다리 아래로 붕어와 송사리를 잡으러가는 길 위에서

탈곡을 마친 보리 땔감을 운반하는 소달구지의 검정 타이어에 발을 집어넣었던 사건

온 동네 애들이 노란 마루가 있는 우리 집에 다 모여 내 어머니의 응급치료를 지켜봤지


어느 날 서울서 친척누나가 방학이라 놀러왔지

까만 세라복장의 교복을 입고 머리는 양쪽으로 묶었는데

나는 왠지 조심스러웠어

넝쿨장미를 꺾다가 가시에 찔려 피를 보았는데

님에게 올리는 선물을 준비하는 과정은

지금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내게 다가온다.


와르바시 공장(누가바, 아맛나 등 얼음과자 중간에 들어가는 나무막대기를 만드는 곳) 주위는 온통 넝쿨장미로 담장을 했지. 사이사이 철조망도 있었는데 공장 처마 밑에는 참새들이 알을 낳! 아 어린 참새가 많았어. 날개를 가진 새들이 살기에 참 좋은 곳이었던 기억이 있어. 장미대에 정확히 여섯이 앉았는데 치렁치렁 매달린 모습이 얼마나 재미있고 아슬아슬했던지.... ^^


넓은 벌판

조용히 흐르는 남한강 강줄기

잔잔히 흐르는 개울 물


사철 여러 가지 꽃들이 작은 언덕 같은 야산 위에와

혹은 가가호호 울타리 속으로 들어와 앉아 산들거리더니

제 색과 향기를 내며 피어오르는 꽃그늘 사이로

어린 시절 그리운 사람들의 얼굴이 떠나지 않는다.


그 중에 유난히 우리의 마음을 잡고 나두지 않는 님들의 꽃이 있었으니

그것은 담장을 가리거나 담장으로의 역할을 하는 넝쿨장미다.

우리의 가라앉은 마음의 지루함을 달래기에 전혀 부족하지 않았다.


여주 강변의 너른 평야지대에 위치한 우리 마을,

초현<草賢>3리의 모습은 이렇다.


면 소재지에서 마을까지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지만

어린 시절 내게는 퍽 멀게만 느껴졌다.

몇 일전 구정 설날 때도 고향을 찾아 갔지만 지금은 앉는 키도 크고...

자동차 위에서 풍경을 바라보니 발아래 바라보는 논이며 밭이며 모두 자그마하고

그렇게 길고 튼튼해보였던 개울 위의 다리들도 왼지 외소 해 보인다.



아내에게 이전 날의 추억을 하나 꺼낸다.




나 어릴 때는 학교를 파하고

큰 다리에서 한 시간 놀고,

작은 다리에서 한 시간 놀면

벌써 서산에 그윽한 노을이 지는데

그 때면 저기 멀리서 백발의 노인이 걸어 왔지...

“ 여든 둘에 돌아가신 아버지는 면 소재지 국민학교 (초등학교) 옆에서 한약방을 하셨지 한 손엔 감초와 마른인삼(딱딱하지만 오래 저작운동을 하면 쌉쌀하고 달콤한 맛이 나는...)과 마른 대추(찌글찌글한)를 누런 봉투에 담아가지고 귀가하시던 아버지"

...아버지는 원래 개성이 고향이셨지 일사후퇴 때 작은 아버지와 조카를 데리고 월남하셨는데 북쪽에 두고 온 가족들 생각이 날 때쯤이면 벌써 멀리 콧노래를 하며 기분 좋게 술에 취하셔서 ! 나를 안아 주셨는데

“우리 막둥이 아부지를 기다리구 있었구나! 허 허 허 ...”

건강을 많이 챙기셨던 아버지는 담배는 몸에 정말 많이 해롭다고 하시며 안 하셨는데

가끔 약주는 하셨지...

항상 비단 한복과 검은 색 두루마기를 입고 다니셨는데

마을 사람들과 먼 곳에서 온 사람들은 우리 아버지가 처방해 주신

한약을 먹고 매우 차도가 빨리 있었지만 항상 한약방을 경영하면서

이런 일은 남에게는 기쁨을 주지만 늘 상 머리를 써야하므로

마음과 머리를 무겁게 하는 직업이라고 하셨지...

2만평이나 넘는 논과 밭을 사드려 직접 농사를 지으려 하실 때에는 벌써 연세가 많아 지셨지... 의술을 베푸셨던 아버지께서는 작은 아버지에게도 그 만큼의 논과 밭을 일구게 되도록 도와주셨지 또한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그 많은 농사일을 작은 아버지께서 관리하게 하셨지 아버지는 일꾼 아저씨들에게도 집도 사주시고, 식모누나 시집도 보내주셨고 식모아줌마에게는 나 보다 어린 아들아이가! 하나 있었는데 항상 가엽다하시며 잘 해주셨지...


제방 뚝이 무너진 해였어

푸른 초원과 어질고 순박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초현리:草賢俚)에 큰 비(물)가 가득 찼어 남한강변의 제방 뚝이 많은 비로 넘실대는 강물줄기를 감당하지 못하고 말았어... 큰 형과 작은 형을 따라서 넘쳐오는 물줄기를 뒤로하고 마을로 들어오는데 , 강남콩과 땅콩 밭 옆의 옥수수 대와 수숫대 들이 비바람에 꺾이고 후드득 뒤엉키며....


난리

물난리가 난 거 였어

그들을 뒤로 하고

달리는 나는

빗물보다 더운 눈물을

흘리며 침수해 들어가는

그들을 불쌍하다고 하며

물에 잠기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여겼지....

마을 어른들과 사람들을 높은 곳으로 피신을 했고 우리는 지대가 높은 ‘새집’이라는 곳에 가서 잠을 잤지.... 새들의 노래 소리에 잠을 깬 나는 조용한 집에 혼자 있다는 것을 알았지 아침이 왔고 하늘은 맑고 투명했는데 물은 보이지 않았어 그러나 황토 물이 마을 중심까지 들어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던 것은 기와집 나무 대문 중간에까지 물이끼가 낀 것을 보아 알 수 있었지....

행길과 밭의 구분은 없었고 푸른 초원 (푸른 초원 = 밭의 곡물들과 논의 벼 : 땅콩 밭은 세 개의 늪을 지나 자갈밭들이 보이는데 까지 펼쳐졌는데 짙은 녹색을 띈 땅콩 잎은 각각은 작지만 땅콩 밭들이 모이면 엄청나게 푸르렀지 땅콩 밭이 끝나는 곳 아래에는 하얀 모래 백사장이 있었고 바로 갈대와 포플라 숲이 연결되었는데 바람에 살랑이는 포플라 나무 잎들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었지 소와 소달구지를 팔고 경운기(딸딸이)를 몰고서 서울서 온 고모와 고모부 식구들과 함께 철엽을 나왔는데 고모는 검은 점! 이 탱탱 박혀있는 하얀 양산을 들고 하얀 한복을 곱게 차려 입으셨던 게 기억이 난다. 따가운 햇살을 피하기엔 미루나무 그늘이 최고야...내 눈 앞에 펼쳐진 푸른 초원은 강에로 나아가는 길 말고 방앗간 앞에 오백 년이나 되어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로 펼쳐진 논들과 논두렁이 반복을 하며 늘어져 펼쳐져 가다가 만두 모양을 한 작은 야산<맨두산 이라고 우리는 불렀다>을 만나 다시 푸른 초원을 연결했지... 그늘진 곳엔 작은 소나무들이 자라고 있었고 분홍 진달래와 흰철쭉, ! 홍철쭉이 만발하고 조금 뒤에는 주황색깔 원추리가 보기 좋았지 이 맨두산? 【?꽃을 다 먹고 칼 싸움도하고 정돈된 산비탈에선 비료부대로 썰매를 타기도 했지 형들을 따라 꿩사냥도 하고, 뱀을 잡고, 까치집도 뒤지고, 겨울 소나무 숲에서 솔 잎을 주워 큰 엄마께 갔다 드리면 사랑방에 불을 때시기도 하셨지... 큰 엄마는 아이가 없으셔서 유난히 나를 귀여워하셨지 아버지와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도 나를 무척이나 염려하셨고 예고 시절 방학 때 내려가면 내가 인절미를 좋아한다고 직접 만들어주시곤 하셨지 큰 어머니를 여보 당신도 봤지 우리의 결혼까? 測?못 보고 돌아가셨지....)은 누런 황갈색(끈적한 밀크 카라멜 색) 진흙으로 뒤덮였지....


붉은 황토가 섞인 무서운 강물이 넘실대며 춤을 췄고

저 멀리 보이는 여름 하늘은 파랗게 웃고 있었지

새집 주위엔 온통 붉은 장미가 넝쿨 째,

주렁주렁 열린 포도송이처럼 탐스럽게,

그 날을 기억하고 있었을 거야!


통나무로 된 전봇대가

복잡한 전선에 얽혀 누워있는 광경은 장엄하기까지 했지....


파란 하늘과 흘러가는 흰 구름,

푸른 초원과 장마철 벌판의 누런 잔상,

붉은 장미의 그윽한 향기가

우리의 기억 속에 가라앉은

마음의 지루함을 달래기에 딱이다.




2004 김덕기







No.: 112, Read: 149, Vote: 0, 2005/01/13 11:3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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