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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미술-영 아티스트] 먹 안에서 펼쳐지는 일상의 소소한 행복 '동양화가 김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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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studio 작성일16-06-20 00:06 조회1,20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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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2월 월간미술 / YOUNG ARTIST


먹 안에서 펼쳐지는 일상의 소소한 행복 "동양화가 김덕기"



깊어만 가는 겨울입니다.
길옆 가로등이 안개에 싸여 있다.
아름다운 밤이다.
가로등 빛으로 사방이 환하다.
안개 속에서 다가서는 여러 그림자들 돼지울,
무궁화나무 가지,
향나무,
깊어만 가는 겨울 밤이 건조하지 않다.
밟히는 땅바닥은 푸석거리고, 자욱한 안개는
 따뜻함의 정서를 내게 주고 있다.
겨울밤이 어느 겨울밤보다 다정스럽게 느껴진다.

김덕기, <겨울밤>

20년 만에 찾아온 살인적인 추위. 이 추운 겨울 속에서도 김덕기는 그만의 따뜻한 행복을 노래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따뜻하다.

김덕기의 작품을 처음 봤을 때 판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백이 없는 짙은 먹색 바탕에 담채로 표현된 형상들. 이것은 회화라기보다는 하나의 예쁜 판화였다. 한국화가 김덕기. 1993년 서울대 미술대학 동양화과를 졸업한 그는 일상의 작은 행복을 먹으로 표현한다. 일반적으로 동양화(한국화)라 함은 광대한 스케일과 심오한 주제로 표현되는데, 그의 작품은 자신이 느끼는 감정의 미묘함과 일상의 소재를 그만의 독특한 필치로 구현한다. 일반적인 동양화와는 다른 맥락이다.

 <봄> 닥지에 수묵채색 2000

고교 시절 부모를 여의고 서울에 유학 온 그에게 평창동의 작은 고시원에서 살던 힘든 시절이 있었다. 그런 와중에 종교의 문으로 인도해 준 고마운 은사가 있었다. 서울예고의 은사님. 형편이 어려운 그에게 레슨비조차 받지 않고 미술을 가르쳐 주었다. 정신의 안정을 찾으면서 인생에 밝음, 빛이 찾아들었다. 1989년 대학에 입학하면서 작업활동과 함께 종교생활에 매진했다.

김덕기의 작품 소재의 변화는 어린 시절의 부모에 대한 아련한 향수, 대학생활, 결혼, 출산 등, 그의 일상과 관련이 있다. 그러나 일관된 주제가 있다. 일상에서 행복을 찾는 것이다. 그는 큰 것을 바라보지 않는다. 작은 것, 소소한 것에서 인생의 기쁨을 발견하려고 애쓴다. 어렸을 때의 어려움에서 오히려 지금의 행복을 확인한다. 결혼과 아기는 최근 그의 가장 큰 행복이다. 작년 6월 아트사이드 넷 전시는 아들의 첫돌에 대한 기쁨을 표현했다.

대학에서 처음에는 기존 수묵화 방식인 농묵과 담묵, 그리고 발묵을 통해 번지는 효과를 이용했다.

최근 사용하는 순묵이라고도 부르는 퇴묵 기법은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다. 작업실로 사용하는 평창동의 작은 하숙집 2층에서 먹을 음지에 놔두고 하루가 지나자 그것이 퇴묵이 된 것이다. 꼭 판화 잉크같이 끈적거리는 퇴묵은 기존 작업의 농담법에 식상한 그에게 새로운 작품 제작의 길을 열어 주었다. 힘이 느껴지지 않는 농담의 표현으로는 삶의 깊이를 이야기할 수 없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퇴묵을 화선지에 시차를 두고 바르고 또 바르면서 쌓이는 먹의 깊은 맛에서 인생의 연륜을 느꼈다.

 <휴일의 정원〉 장지에 수묵채색 139×86cm 2000

최근 개인전을 준비하면서 그의 작품 경향이 많이 바뀌었다. 세가지로 요약되는 그의 작업은 닥지에 수묵담채 방식으로 표현하는 정물, 얇은 순지에 표현하는 풍경과 장지에 퇴묵으로 엷게 바탕칠을 한 후 짙은 먹으로 표현하는 일상의 관찰이 그것이다. 어눌한 퇴묵은 아주 오래된 작품인 듯 보이게 한다. 그 안에 심플하게 가족에 대한 사랑과 일상의 행복을 담는다. 한국화의 장욱진 풍이라고 할까? 개인의 행복을 이야기하는 그의 작품은 다른 사람들에 따뜻한 감정을 환기시키면서 작품의 개인적인 아우라를 대중 속으로 확장시킨다.

이런 작품에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장식성이 강하다는 점이다. 그는 미술의 기본적인 요소를 바로 장식성이라고 본다. 회화도 마찬가지다. 이를 통해 동양화에서 보이지 않는 세계, 이상향을 알기 쉽게 보여 주고자 한다. 어렵게만 느껴지던 기존 동양화에서 새로운 조형과 매체로서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기존 한국화에서 일탈(?)한 그의 작품은 새로운 작품을 원하는 퓨전 시대의 대중에게 변화와 혼성의 한국화를 보여 준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온고지신(溫故知新)’이 아니겠는가?

류동현·기자

http://www.wolganmisool.com/200102/artist_03.htm

No.: 45, Read: 46, Vote: 0, 2005/01/12 14: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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