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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김덕기 씨의 여주 작업실 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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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studio 작성일16-09-17 15:29 조회99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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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김덕기 씨의 여주 작업실 나들이
가족을 그리기에 좋은 곳 나의 고향
 
1 여주 새 작업실로 이사 온 지 4개월째, 벌써 작업 중인 캔버스가 벽면을 채우고 있다.

“쭉 오시다가 내비게이션이 멈추면 전화하세요.” 화가 김덕기 씨의 새 작업실은 여주의 깊숙한 시골에 있다. 창작 활동에 몰두하고자 22년 만에 고향 여주로 돌아갔단다. 귀향은 작가에게 새로운 영감을 줄 터, 새 둥지를 궁금해하는 이들을 위해 오픈 파티가 열렸다.
화가가 고향으로 돌아간 까닭은 <행복이 가득한 집>이 처음 화가의 작품으로 표지를 만들기 시작했던 2002년 9월호, 그 첫 번째 표지를 장식한 작가가 김덕기 씨였다. 가족의 소소한 일상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화폭에 담아낸 그의 그림처럼 <행복> 표지로 의미 있는 작품은 없을 것이다. 당시 서른 중반이던 그가 이제 마흔이 되었다. 30대에서 40대로 넘어가면서 작업에도 변화가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창작 활동에 몰두하기 위해 김덕기 씨는 ‘되돌아가기’를 선택했다. 경기도 여주에서 태어난 그가 서울예고에 진학하려고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온 지 22년 만에 여주로 돌아왔다. 서울 서초구 반포에 있는 집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이곳 여주 작업실로 출퇴근한다. 작업이 한창일 때는 작업실에서 숙식을 해결한다. 1998년부터 몸담았던 보성고등학교 미술 교사 자리도 지난 2월 그만두었다. 전업 작가를 선언한 남편의 결심에 아내 한연선 씨는 처음엔 흔쾌히 찬성하지 못했다. 안정된 직장을 포기해야 하지 않는가. 하지만 이내 생각을 바꿔 남편을 온 마음으로 지원하기로 했단다.

그에게 고향은 부모의 품이며 손에 잡힐 듯 생생한 자연이다. 그러니 가족을 작품의 주요 모티프로 삼는 김덕기 씨에게 귀향은 더욱더 절실했다. 그의 유난한 가족애와 작품 모티프의 원천을 유년 시절에서 찾자면 아마도 아버지로부터 각별한 애정을 받았다는 점일 것이다. 예순일곱 살에 그를 얻은 아버지가 늦둥이를 바라보는 눈은 늘 촉촉했다. 어린 시절 연로하신 부모님을 떠나 보낸 기억도 그에게 남다른 가족 사랑을 싹트게 했다. 또한 그가 꼬마였을 때는 하루 일과가 온통 산으로 강으로 뛰어다니는 게 전부였으니, 그에게 자연이란 도시인이 생각하는 추상적이고 정지된 풍경이 아닌 구체적이고 생동감 있는 동영상과 같다. “확실히 편안해졌달까요? 이곳은 문명의 혜택과는 거리가 먼 시골이니 도시만큼 기능적으로 편하지는 않지만, 여기에 온 뒤로 제 마음에 안정감이 생겼습니다.” 그는 1월에 이곳으로 옮겨 온 직후부터 그림에 맹렬하게 달려들었다. 교사로 재직할 때와 달리 한 번에 서너 시간씩 그림에 매달릴 수 있어 가속도가 붙는다. 여유가 생기니 슬슬 사이즈가 큰 작품을 그릴 준비도 하고 있다.


2 화사한 색감이 돋보이는 신작 ‘접시꽃 사이로’(2008).

그림 같은 경치 속에 오도카니 선 작업실 김덕기 씨가 새 작업실을 지은 북내면은 여주군 중에서도 개발이 덜 되어 한적한 시골이다. 소음도, 불쾌한 공기도 없이 천혜의 자연 속에 푹 파묻힐 수 있다. 봄이면 어느 날 문득 송홧가루가 ‘팍’ 터져 나와 공기 중에 부유한다. 마치 노란 안개가 피어난 세상에 온 듯하다. 작업실 바로 앞에는 금당천이 흐른다. 근처에 백로 서식지가 있을 만큼 물이 맑다. 저녁 무렵이면 금당천 너머에 백로 20~30마리가 몰려드는 모습을 볼 수 있다(언젠가 그의 그림에 백로가 등장할지도 모르겠다). 밤 10시쯤 되면 개구리가 악을 쓰듯이 울어댄다. 주위가 온통 무농약으로 농사짓는 논밭이기 때문에 온갖 동식물이 마음 놓고 살고 있다.

이러한 진풍경은 사실 최소 한 철을 온전히 이곳에서 살아본 사람만이 체험할 수 있을 터다. 대신 이 작업실에 처음 방문한 이에게는 커다란 창문을 꽉 채우는 그림 같은 경치를 자랑하면 좋을 것 같다. 앞산은 여인의 젖가슴처럼 봉긋하고 넉넉하게 솟았다. 흰 눈이 덮이면 산꼭대기부터 아래까지 층층이 명암이 다른 기가 막힌 절경이 펼쳐진다. 앞산에서 집 앞까지 논이 쫙 펼쳐진다. 이른 봄부터 모내기 전까지는 논에 물이 찰랑찰랑 차 있어서 마치 작업실이 물 위에 뜬 섬 같단다. 늘 변화하는 창밖의 풍경은 어느 시점에 보아도 즐겁다.

인가와 외따로 떨어진 이 작업실은 원래 공장과 창고로 쓰던 건물을 개조해서 만들었다. ‘ㄱ’자형으로 나란히 선 A, B동의 건물을 연결해서 작업실로 쓰고, 별채는 숙소로 쓴다. 높이가 6m가량 되는 A동에서는 주로 아크릴과 유화를 쓰는 캔버스 작업을 하고 한지에 먹, 수채화, 과슈, 파스텔, 콘테 등으로 그리는 종이 작품은 B동에서 바닥에 엎드린 채 그린다. B동은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장으로도 사용한다. 그의 작업실 개조는 K옥션 사옥의 리모델링을 담당했던 보아스의 박범진 대표가 맡았다. “기능성을 고려해 동선을 최대한 짧고 편하게 만들었습니다. 황량한 창고였던 공간이므로 내부를 심플하면서도 아기자기하게 개조했지요. A동과 B동을 연결하는 통로를 아치형으로 꾸미고, B동에 햇살을 그대로 투과시킬 수 있는 천창을 달았습니다.”


마당에는 곱게 가꾼 화단이 있다. 식물세포학을 전공한 아내가 작업실 오픈 기념으로 잔잔한 꽃밭을 선물했다고. 양귀비, 글라디올러스, 감나무, 살구나무, 매실나무 등 철 따라 옷을 갈아입는 꽃과 나무를 오종종하게 심은 아담한 꽃밭이다. 이렇게 소담스러운 작업실에 있으면 생활도 소박해진다. 간혹 급하게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중고 자전거를 타고 읍내에 다녀온다.

그림과 함께한 아틀리에 콘서트 김덕기 씨의 오픈 하우스 행사에 모인 사람들은 5월 초의 오후 봄볕을 즐기고 있었다. 그중에는 그의 그림을 사랑하는 컬렉터도 여럿 있었다. 한국 짐보리의 박기영 사장은 김덕기 씨의 작품을 처음 만났을 때의 기억을 술회했다. “어느 날 인터넷으로 우연히 김덕기 씨의 작품을 보고 사랑에 빠졌습니다. 제가 오랫동안 찾던 그림이었지요. 다음 날 바로 그의 작품을 구입했습니다. 회사에 걸어두었는데, 저 혼자 감상하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그의 작품으로 연말에 회사 달력을 만들어 여럿이 즐기기도 했습니다.”


해가 낮아진 오후 6시 무렵, 작업실에서는 김덕기 씨와 절친한 가수 유열 씨가 재즈 뮤지션들과 함께하는 콘서트가 열렸다. 유열 씨는 김덕기 씨의 작품을 ‘밝고 맑은 그림’이라며, 작품과 어울리는 레퍼토리를 연주했다. 특히 동요 ‘나뭇잎 배’의 가사가 관객들의 마음에 환하게 번졌다. “낮에 놀다 두고 온 나뭇잎 배는/엄마 곁에 누워도 생각이 나요/푸른 달과 흰 구름 둥실 떠가는/연못에서 사알살 떠다니겠지.” 미술 작품이 걸린 작업실에서 밴드 연주와 라이브 노래를 듣다니, 눈과 귀가 동시에 호사한 집들이 행사였다.

음악이 흐르니 나른해진다. 말랑말랑해진 감성으로 다시 한 번 김덕기 씨의 그림을 살펴보았다. 그가 올봄에 그린 작품에는 이미 복사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이곳을 찾은 큐레이터들이 ‘김덕기 씨가 여주 작업실로 옮겨 온 뒤에 그린 새로운 작품은 색감이 더욱 풍부해지고 세부 묘사가 좀 더 정밀해졌다’고 말하는데 정말 그런 것 같다. 생육하고 번성하는 이 땅의 모든 생물이 그의 작품에서 점점 더 소란스럽게 자기 목소리를 내려나 보다.

No.: 199, Read: 71, Vote: 0, 2008/06/25 10:4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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